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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영사운이란? (15) 등록일 2016.02.16 21:49
글쓴이 kwontayseek 조회 262

바/영/사/회-"[바]르게 [영]원히 [사]는 [회]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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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 평등

소위 "양성평등"을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부추기고 있는 것은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가르치는 성경 폄훼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그리스도의 격하가 주목적이다. 왜냐면 남녀 평등이 되면 사람의 육체 생성에서 여자만 아니라 남자도 똑같이 개입된다는 논리가 되는 까닭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근거를 잃게 된다는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의 계산이다. 실상대로 말하면 사람의 육체는 여자로부터 전적으로 나오고[하기야 최초의 여자의 육체도 최초의 남자에게서 난 것이다] 사람의 영혼과 관련된 것은 남자에게서 나는 것이기 때문에 예로부터서도 사람은 남자의 씨라고 했고 여자의 씨라고는 하지 않았다. 사람은 영적 존재이므로 육체보다 영혼이 중심이고 핵심이므로 그런 것이다.

성경에서만은 “여자의 씨[후손-창 3:15]를 인정하고 있으니 곧 그리스도 탄생에만 한한다. 여자의 씨로서는 이 단 한번의 경우다. 최초의 여자의 육체가 최초의 남자의 육체로부터 났으니 남녀를 불문한 인간의 모든 육체가 온전히 여자[모친]의 육체에서부터 생성된다는 사실에 아무 하자가 없다. 이 사실은 “네피림”[창 6:2-5]에서도 입증된다. 악령이 자연계에 속한 인간 육체로 변신하여 인간 여자와 관계함으로써 낳은 자식[남자임은 분명하나 여자도 낳아졌는지는 불명]들인데 육체는 여자로부터 났고 영은 악령들의 것이므로 형상은 사람의 모습이지 악령들의 원래의 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영물과 인간이라는 이종(異種) 간의 관계인지라 그리고 영물의 능력은 인간의 그것에 비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막강한지라 남자로 변신한 악령의 기운이 스며들어 당시 네피림은 막강한 신체의 소유자로서 모두 거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인간 육체는 전적으로 여자[모친]로부터 물려받는 것이요 그런 육체 생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영혼의 생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남자[부친]로 기인함이 드러난다.

왜냐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라는 이중 구조이므로 부모가 들어 자식을 낳아도 역할 분담이 분명 정해져 있어야 함이다. 그래서 영혼 생성은 남자에게 속한 것이라면 육체의 생성은 여자에게 속한 것이라야 옳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부터 영적 존재이므로 영혼은 머리되는 남자[부친]로부터 그 근원을 이루고 육체는 여자[모친]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친의 영혼이 자식에게 물려진다는 것은 아니니 각 개인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기 때문이다. 단지 그렇게 영혼이 생성되는 인자(因子)가 전적으로 부친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네피림도 인간들처럼 그들이 죽어 육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죽은 후 영혼으로는 남아 있어 지상을 배회하니 곧 성경에서 시인하는 "귀신"들이다. 주님께서 이들을 “더러운 귀신들”이라 하셨으므로 그 증명이 된다. 왜냐면 악인의 영이라면 악한 영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더럽다"고 하실 리 없다.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악함도 더러움이기는 하지만[마 15:11] 죄를 더럽다 하는 것과 인격성을 지닌 영을 가리켜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면 그 존재를 더럽다고 할 때는 그러한 존재의 창조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단지 악하다는 의미로 주님께서 "더럽다"고 하실 리는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돼지 떼에게 집단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군대”라는 이름의 귀신들이 무저갱에는 내쫓지 마시기를 애원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눅 8:31]. 무저갱(無底坑)에 들어가는 것이 네피림이라는 사실은, 장차 출현하게 되는 적 그리스도 즉 “짐승”이 무저갱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로써도 확인된다[계 11:7].

그러므로 네피림은 악령들의 후손인데도[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더러 “너의 후손”이라 하신 것처럼-창 3:15] 사람의 육체를 입어 사람이 되어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여자[사람]의 육체를 물려받는 까닭이다. 악령의 씨들이 악령의 육체를 물려받는 것이라면 악령은 신령한 몸일 뿐 아니라 우리 인간처럼 육체와 영혼이 구분되어 있는 이중 구조가 아니고 우리로 치면 영혼과 육체의 단일 구조이므로 사람의 육체로 나타날 수가 없고 따라서 사람이 될 수도 없다.

단지 그들은 능력이 있어 일시 사람의 육체로 변신한 다음에 그런 육체적 기능으로 인간 여자들과 관계했을 뿐으로 그런 짓을 한 다음에는 즉시 본래의 형태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물이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육체만인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므로 그네들의 씨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여자의 육체를 물려받는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네피림의 영혼은 악령들의 분신이므로 결정적으로 여자의 후손[씨]이 아니라 악령의 씨인 것이니, 이로 보아서도 인간은 남자의 씨이고 여자의 씨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성(姓, family name)도 남자의 씨를 따른다. 이런 전통까지도 뒤엎는 것은 인간 스스로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지배자[王, 임금-요 14:30]인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앞의 지적과 같은 그러한 의도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이 입증된다.

그러한 이치로써 그리스도께서도 탄생하셨으니 즉 영이신 하나님 곧 영으로 계시던 하나님의 아들께서 성령으로 친히 여자의 태를 통해 세상으로 나오시니 사람의 육체를 마리아로부터 물려받아 완전한 육체 곧 사람이 되신 것이다. 이는 애초에 여자[하와]가 남자[남자]에게서 났으므로 이는 남자가 여자를 낳은 것과 같은 의미이어서[스스로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 된 것이 유일한 차이] 대등하지 않고 대소, 주종 관계를 이루어 있으므로, '주된' 영혼은 남자[부친]에게서 나와 그 영향력으로 여자[모친]는 단지 그런 영적인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바탕에다 '부속적인' 인간 육체만을 입혀 주는 역할인 것이다.

그러므로 네피림은 인간 남자가 필요 없이 영물이 그 스스로 육체로 변신하여 그 스스로 자기 자식들을 낳은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역시 남자 필요 없이 친히 영이시므로 얼마든지 여자의 태에 들어가셨다가 그 태를 통해 세상에 나오시니 사람의 육체를 입으실 수 있음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영이시므로 그런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으나 따로 무슨 인간의 영혼이 필요하시지 않고[이 경우 반드시 인간의 남자가 개입되어야 하는 것], 영원 전부터 영으로 계시던[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 4:24] 그 영께서 말하자면 이 '새로 조성된 육체의 영혼'으로 새로이 위치해 계시는 그 차이, 그 변화뿐이다.

네피림의 경우에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니, 영물들이 비록 "영"[히 1:14]이기는 하나 하나님께서 "영"[요 4:24]이시라는 사실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아무리 영이라 하더라도 그 고유의 육체가 있음이니 영이 곧 육체요 그들의 육체가 곧 영이다. 또 인간 육체로 일단 변신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인간 여자의 태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다고 가정하면 사람이 되는 것은 동일하나, 죽을 때는 그 영물 자체가 진짜 한 사람으로서 죽어 버리는 것이니 이제는 완전히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짓을 어느 악령이 하겠는가. 할 필요가 없어서도 아니한다.

네피림은 당대의 거인들[오늘날 거인들이라고 해서 이런 네피림과 연계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 증거는 전혀 없기 때문이며 신체상의 돌연변이라 이해되고 또 실상 이런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고 필요 없는 호기심 충동일 뿐으로 오히려 백해무익이다]이라고 했으니[네피림 모두가 그런지 일부만 그런지는 불명], 그렇다면 여자의 육체를 인간이 물려받는 일에도 남자의 영향이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 할지 모르나, 악령들은 아담의 씨로서의 보통 인간의 남자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악령들은 그 육체 자체가 영이므로 그 신령한 육체를 인간의 자연계에 속한 육체로 일시 변환시켰어도 아담 후손의 남자의 육체와는 차원부터 다른 것이다. 아담의 씨는 말 그대로 인간 육체이지만, 악령들의 경우 영물임에도[신령한 몸이 그 고유의 몸] 의도적으로 인간의 육체로 변환시켜 일시적으로 인간 육체가 되어 그런 짓을 함으로써 낳은 그 소생들의 육체이므로 그런 엄청난 차이의 영향력이 여자의 육체를 압도한 경우다. 그래서 영물의 인자(因子)를 영향을 입어 거인으로 생산된 경우다.

이와 같은 격차로 인해 아담의 씨의 육체와 동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담의 씨로서의 남자일 경우 여자의 육체와 동질의 육체이므로 그런 차이는 생겨날 수 없다. 즉 부친의 육체의 특성은 일부분만 여자의 육체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한 인간으로서의 완전한 육체의 특성은 모친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이라 함이다. 이미 설명한 것이지만,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왜 인간 출생을 두고 남자의 씨라 하고 여자의 씨라 하지 않는가 할 때 이유는 간단하다.

육체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육체를 타고 나지만 인간으로서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것이 남자로부터 여자에게 가 닿음으로써 한 인간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 '핵심 요소'에 인간 영혼이 조성되는 바탕이 자리잡아 있다는 사실이다.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나오는 것이나 부친의 그런 '핵심 요소'를 통해 비로소 영혼이 탄생하게 된다고 하겠다. 사람은 육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고[단지 짐승과 같은 것일 터이므로] 반드시 핵심으로서의 영혼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혼과 관련된 것이 남자에게서 나오므로 "남자의 씨"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피림의 경우 악령[영물]들은 원래부터가 이 자연계에 속한 육체가 아니므로 비록 인간과 같은 자연계에 속한 육체로 스스로를 변환시켰다 하더라도 그 결과 나오는 이런 '핵심 요소'가 정상적인 아담의 씨[남자]에서부터 나는 '핵심 요소'와는 전혀 판이한 것이라고 우리는 인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순수한 영혼의 조성을 위한 '핵심 요소'가 아니라, 그 이질적인 '핵심 요소'에 영물로서의 영적인 요소가 강력하게 가미되어 인간 여자의 태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런 판이한 육체[거인]가 조성될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영물은 그 육체가 있어도 그 육체 자체가 영으로서 영의 형상화이므로, 아담의 씨의 경우 남자로부터 나오는 그 '핵심 요소'가 장차 탄생될 영혼의 조성을 위한 바탕이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그 영혼이 정착시켜 주는 그런 역할이 아니라, 네피림 생성의 경우 악령의 영 그 자체가 바로 '핵심 요소'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물은 그 영혼이 육체이고 육체가 그 영혼이 되어 있는 단일 구조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체로 분리된 이중 구조로서의 아담이 씨[후손]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씨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여자의 태에 임하여 오신 후 그 태를 통해 사람으로 나신 경우는 어떤가 하면, 친히 성령으로 그렇게 태에 들어오신 유일한 예이므로 역시 다른 차원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당신께서 친히 여자의 태에 임하여 오신 경우이나[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네피림은 악령 자신이 여자의 태에 들어온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 "영(靈)'이심과 영물들이 "영"이라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서의 차이인 것이다.

이들 영물들이 "영"[히 1:14]이라 해도 일정한 육체[신령한 몸]로 되어 있는 영이므로 인간의 태에 들어올 수도 없다. 가정을 해서 인간 여자의 태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리스도처럼 완전히 그 자신이 사람이 되어 버려 네피림이 아닌 그 스스로 사람이 되는 까닭에 그리스도처럼 죽음을 맞으면 고스란히 죽게 되고, 죽고 나면 악령이 아닌 한낱 귀신으로만 전락하여 구천을 헤맬 것이니 어느 악령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는가. 악령들은 자기의 육체를 그렇게 변환시켜 그런 짓을 한 다음에는 곧장 신령한 몸으로 복귀해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父]의 영혼이 아니라[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것이다-히 12:9/사 57;16/슥 12:1] 영혼을 이룰 수 있는 남자의 진수(眞髓)라 할까 그런 무엇이 여자[母]의 태를 건드릴 때[그리스도의 경우, 마리아의 태가 성령의 임하심에 따라 그런 반응을 보임으로써] 영혼이 조성되면서[그리스도의 경우 성령으로 계시는 관계로 별도로 영혼 조성이 필요 없어] 여자[母]의 육체를 그 신생아는 물려받게 되는 그런 구조다.

고로 남자와 여자가 평등일 수가 없다. 여자는 단지 남자의 씨를 받아 육체[인간 육체 곧 여자 자신의 육체]를 입혀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므로 여자[모친]의 육체를 자식들이 물려받아도 남자[부친]의 육체를 물려받는 형식이니 남자가 인간으로서의 대표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애초 남자로도 여자로도 특정 성으로 창조되지 않고 양성의 특성을 모두 갖춘 완전한 한 사람으로 아담을 지으셨으므로 이 아담에다 대표성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이른 대로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다. 남자에게서 여자가 난 것과 같이 남자 또한 여자[母]로 말미암아 난 것이다[고전 11:11,12]. 고로 평등하다느니 않다느니 하는 불평은 무식한 말들이고 진정 사람 삶의 아름다운 조화는 대칭성 원리에서 대소, 주종, 인과 관계에 따른 조화, 균형, 통일에 있다. 모두가 커도 안되고 똑같이 작아도 안되고 모두가 머리되어도 안되니 머리가 있으면 이를 따르는 몸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서 만일 이런 것이 없다면 균형과 조화는 찾아볼 길 없고 아름다움은 구경도 못하고 머리가 둘 달린 것과 같은 괴물의 형상만 나타내어 서로 다투기만 하다가 끝나게 된다.

조화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크고 하나는 그 머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 몸의 역할이되, 남자는 여자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자기 머리처럼 따르면 되는 일이다. 서로 하나가 되어 있는 구조에서 무슨 하자가 있고 불만족이 있으며 불평이 있으리요. 머리가 말하기를 몸을 자기 것이라 하고 몸도 똑같이 말하기를 머리가 자기 것이라 하면 되었지 그래서 하나가 되어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이 있다는 말인가.

머리로서의 남자가 일방적으로 머리된 것만 주장하여 이런 반발과 부작용이 생겼으니 남자의 과실은 크다. 남자가 그렇게 한다고 또 여자까지 나도 그렇게 하겠다 하면 어느 한 쪽이라도 정상으로 남아 있어 주어야 나중에라도 정상으로 돌이킬 수 있는 여력과 기회가 생기는 법이지 둘 다 비정상이기를 바라 비정상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 때는 끝장이다. 영원히 정상이라고는 어디서도 찾지 못하게 된다.

적 그리스도의 출현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모방에 있어 인류를 속이는 데에 있으므로 이 동정녀 탄생까지 모방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은 쉬운 일이다.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의 씨"라고 이미 에덴낙원의 불상사 당시부터 예고된[창 3:15] 적 그리스도 즉 "짐승"[계 17:8]은 네피림 중 하나이므로 처녀의 몸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녀의 태에 들어가면 "처녀 탄생"이 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환생, 전생, 윤회 등은 이런 네피림의 작태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느냐 하면 그의 때가 되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모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살후 2:7]. 그러나 지금은 그 장애가 걷혔으므로 최대한으로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은 그 속임수를 펼치게 되어 있다. 물론 귀신이라고 해서 아무 귀신이나 아무 여자에 태에 들어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네 나름의 어떤 질서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하나님의 철저한 통제가 가해질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여자의 태에 임하여 오신 후 그 태를 통해 사람으로 나신 경우는 어떤가 하면, 친히 성령으로 그렇게 태에 들어오신 유일한 예이므로 역시 다른 차원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당신께서 친히 여자의 태에 임하여 오신 경우이나[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네피림은 악령 자신이 여자의 태에 들어온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 "영(靈)'이심과 영물들이 "영"이라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서의 차이인 것이다.

이들 영물들이 "영"[히 1:14]이라 해도 일정한 육체[신령한 몸]로 되어 있는 영이므로 인간의 태에 들어올 수도 없다. 가정을 해서 인간 여자의 태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리스도처럼 완전히 그 자신이 사람이 되어 버려 네피림이 아닌 그 스스로 사람이 되는 까닭에 그리스도처럼 죽음을 맞으면 고스란히 죽게 되고, 죽고 나면 악령이 아닌 한낱 귀신으로만 전락하여 구천을 헤맬 것이니 어느 악령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는가. 악령들은 자기의 육체를 그렇게 변환시켜 그런 짓을 한 다음에는 곧장 신령한 몸으로 복귀해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父]의 영혼이 아니라[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것이다-히 12:9/사 57;16/슥 12:1] 영혼을 이룰 수 있는 남자의 진수(眞髓)라 할까 그런 무엇이 여자[母]의 태를 건드릴 때[그리스도의 경우, 마리아의 태가 성령의 임하심에 따라 그런 반응을 보임으로써] 영혼이 조성되면서[그리스도의 경우 성령으로 계시는 관계로 별도로 영혼 조성이 필요 없어] 여자[母]의 육체를 그 신생아는 물려받게 되는 그런 구조다.

고로 남자와 여자가 평등일 수가 없다. 여자는 단지 남자의 씨를 받아 육체[인간 육체 곧 여자 자신의 육체]를 입혀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므로 여자[모친]의 육체를 자식들이 물려받아도 남자[부친]의 육체를 물려받는 형식이니 남자가 인간으로서의 대표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애초 남자로도 여자로도 특정 성으로 창조되지 않고 양성의 특성을 모두 갖춘 완전한 한 사람으로 아담을 지으셨으므로 이 아담에다 대표성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이른 대로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다. 남자에게서 여자가 난 것과 같이 남자 또한 여자[母]로 말미암아 난 것이다[고전 11:11,12]. 고로 평등하다느니 않다느니 하는 불평은 무식한 말들이고 진정 사람 삶의 아름다운 조화는 대칭성 원리에서 대소, 주종, 인과 관계에 따른 조화, 균형, 통일에 있다. 모두가 커도 안되고 똑같이 작아도 안되고 모두가 머리되어도 안되니 머리가 있으면 이를 따르는 몸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서 만일 이런 것이 없다면 균형과 조화는 찾아볼 길 없고 아름다움은 구경도 못하고 머리가 둘 달린 것과 같은 괴물의 형상만 나타내어 서로 다투기만 하다가 끝나게 된다.

조화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크고 하나는 그 머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 몸의 역할이되, 남자는 여자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자기 머리처럼 따르면 되는 일이다. 서로 하나가 되어 있는 구조에서 무슨 하자가 있고 불만족이 있으며 불평이 있으리요. 머리가 말하기를 몸을 자기 것이라 하고 몸도 똑같이 말하기를 머리가 자기 것이라 하면 되었지 그래서 하나가 되어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이 있다는 말인가.

머리로서의 남자가 일방적으로 머리된 것만 주장하여 이런 반발과 부작용이 생겼으니 남자의 과실은 크다. 남자가 그렇게 한다고 또 여자까지 나도 그렇게 하겠다 하면 어느 한 쪽이라도 정상으로 남아 있어 주어야 나중에라도 정상으로 돌이킬 수 있는 여력과 기회가 생기는 법이지 둘 다 비정상이기를 바라 비정상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 때는 끝장이다. 영원히 정상이라고는 어디서도 찾지 못하게 된다.

적 그리스도의 출현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모방에 있어 인류를 속이는 데에 있으므로 이 동정녀 탄생까지 모방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은 쉬운 일이다.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의 씨"라고 이미 에덴낙원의 불상사 당시부터 예고된[창 3:15] 적 그리스도 즉 "짐승"[계 17:8]은 네피림 중 하나이므로 처녀의 몸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녀의 태에 들어가면 "처녀 탄생"이 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환생, 전생, 윤회 등은 이런 네피림의 작태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느냐 하면 그의 때가 되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모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살후 2:7]. 그러나 지금은 그 장애가 걷혔으므로 최대한으로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은 그 속임수를 펼치게 되어 있다. 물론 귀신이라고 해서 아무 귀신이나 아무 여자에 태에 들어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네 나름의 어떤 질서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하나님의 철저한 통제가 가해질 것은 당연하다.

첫 사람 아담의 경우 남자와 여자는 육체적 구조[남자와 여자]도 다르지만[사람으로서의 형태는 같으나] 영이 서로 다르므로 같지 않은 개개의 독립된 존재였다. 나와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이상 설명과 같이 사람으로서의 구조도 다르지만[그리스도께서는 남자가 아닌 ‘여자의 씨’로서의 유일하신 사람으로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신데 비해 우리는 아담의 씨로서 아담에게서 난 즉 ‘남자의 씨’로서의 사람이므로], 우리의 영은 사람의 영인 반면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신 그런 구분이 되어 있음이다.

"여자가 남자를 안았다"는 예언에서, "그리스도께서 잉태된 또는 그리스도를 낳은 여자 곧 마리아도 그 육체는 아담의 육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아담의 씨가 아니냐" 하겠지만, 아담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같은 육체라는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씨로서의 정상적인 ‘아담의 씨’이냐 혹은 그렇지 않으냐 하는 여기에 초점이 있다. 남자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나게 마련인데 그래서 아담의 씨라고 하는데, 그런 남자에게서 난 것이 아닌 여자 스스로 그 태에서 낳은 그리스도이시니 아담의 씨가 아니라 사상 초유의 "여자의 씨"[창 3:15 - '후손'이라는 우리말 번역은 영어로는 씨 곧 'seed']이신 것이다.

육체는 물론 아담의 육체를 물려받은 것이므로 사람이신 것이다. 그러나 친히 성령[하나님의 아들]으로 여자의 태에 임하시어 그 태로부터 나오심으로써 된 사람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친히 독자적으로[아담의 씨로서가 아닌] 사람이 되심으로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서의 위치에 계시니, 다시 말해 "마지막 아담"으로서 아들께서 친히 당신 자신을 그렇게 만드시니, 혹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그렇게 만드심으로써[이는 아들께서 만물을 만드셨고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해서 만물을 만드셨다는 말과 같은 것-요 1:3/히 1:2], 이로써 우리가 아들과 같은 형상[성령을 영원히 그 안에 모시는]으로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이므로, 이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다음 여자를 만드심과 같은 과정을 따름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신랑이라, 교회를 그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고 요한 계시록에 묘사되었고 신랑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시면서도 하나님이시니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그 몸된 교회로서 신부로서 표현됨은 마땅하다. 하나님이 아니시고 사람일 뿐이시라면 신랑이 한 사람이니 신부 역시 한 사람으로만 그칠 것이다. 아담 한 사람에게 여자 한 사람만이 필요했던 것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또한 “마지막 아담”이시기는 하나 사람만이 아니시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수야 얼마가 되든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창조되는[새롭게] 것이다. 이는 몸의 많은 지체를 거느리는 머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즉 사람 중 어느 누구가 선별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되셔야 다시 말해 사람이시면서 하나님,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되셔야 하는 이치와도 같다.

그리스도 이전에는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아니셨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단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죽은 자가 된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에서 완전 단절된 것이다.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이니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라서 산 자의 머리가 되시지 죽은 자의 머리가 되실 리 없다. 고로 이제 인간의 머리가 되시기 위해서는 새로운 창조에 의한 새 차원에서의 머리되심이 필요하니 곧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심이다.

위의 설명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성령을 모신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 성령이시고 나도 내 안에 성령을 모시고 있음이다. 나는 내 '영혼'처럼 성령 곧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아버지의 영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아들과 하나로서 계시므로 아들 계시면 곧 아버지 역시 계심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나처럼 육체를 가지신 사람이시니, 그 영[성령]으로만 내게 임하신 것이 아니니 그래서 비록 그 몸으로는 신령한 몸 그대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행 7:56] 내 안에 성령으로 임하심 자체가 육체로 임하여 계심과 똑같은 것이다.

사람만인 우리와는 다르신 것이다. 또 사람이시지만 하나님이시므로 나에게만 임하여 계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임하여 계시고 그리고 또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그리고 온 우주에 충만해 계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그렇게 계심이다. 내 안에 계시므로 이는 자동적으로 내가 또한 그 안에 있음이다. 내게 주신 선물로서 어디까지나 나를 위하시는 의미에서 내 안에 계시나 내가 또한 그 안에 있어 주님의 소유가 되어 있는 관계로 나는 항상 주님을 위하고 주님을 섬기는 자이다.

나의 삶이 영원히 그러하다. 주님은 영원히 나를 위하시고 나는 영원히 주님을 위한다. 주님께서 아버지를 위하심으로써 나를[우리를] 위하시어 나 위해 죽으신 것처럼 나 또한 주님을 위함으로써 이웃을 위하게 되어 이웃의 구원을 위해 또는 형제들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위치이다[요일 3:16]. 아담의 경우에서 보듯이 원래 한 남자에 한 여자다. 한 남편에 한 아내이다. 여러 처첩을 거느리는 것은 인간 욕심에 의한 것이지 정상이 아니다.

구약에서는 자식을 낳지 못함에 따라 아브라함도 또 그 후손들도 아내를 더 두었지만 그리고 왕이 되면 왕이라는 당시 제도를 따라 여러 처첩을 두었지만 그리스도 오신 후 즉 모든 것이 밝혀지고 진리가 드러나지고 모든 인간이 이 진리에 복종하기에 이른 오늘날에는 한 남편에 한 아내다. 이것은 사랑으로 둘이 하나 되는 생명의 법질서를 따름이다. 갑과 을만의 단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관계이지 그 이상의 관계는 없을뿐더러 필요하지도 않고 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새 창조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옛 것이 있으면 새 것이 있어 짝을 이루어 서로 대칭 관계다. 그 위에다가 또다시 재판, 3판 하는 식으로 진전되지는 않는다. 고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 이후에는 다시는 속죄하는 제물이 없다[히 10:26]. 첫 창조가 폐기될 운명에 이르므로 새 창조까지는 허용이 되나 이 새 창조 이후로는 모든 것은 완결이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만이 영원히 존재한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고 했거니와 사랑하는 신부에 대한 신랑의 마음 그것이다. 또는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마음이니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 대한 조물주 하나님의 마음, 그 어버이로서의 심정이 그러하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그리스도와 하나 됨으로써 닮는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머리시요 또한 신랑의 위치에 계시지만 하나님이시니 엄연히 조물주이시고 따라서 영원하신 아버지시다[사 9:6]. 따라서 우리는 그 어린 아이들[children]이다[히 2:1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아들이시고 그리고 사람이시므로 영원히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나의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요 20:17]라 하시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기 운동

인간 사회에 자행되는 모든 죄와 악이 모두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은행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때는 돈방석에 앉아 좋아하더니 남편이 퇴직하고 중풍이 들어 방구석 신세가 되자 6년간 집 옥상에 올려다 놓고 죽게 버려둔 아내도 있다. 요즘은 여자들까지도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일반적으로 남자의 못된 행패야 예로부터 그러했다. 너무 못살아 맞벌이 부부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무조건 남들처럼 잘 살고 보자는 비교 열등감에 빠져 "돈, 돈" 하느라 아이는 내팽개쳐져 가정교육은 뒷전이니 인간이 아닌 짐승이 되어가는 '막가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소위 "과학 문명이 발달되어 잘 살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현대 사회의 단면도(斷面圖)이다. 인성(人性)이 황폐하면 인생 삶도 끝장이다. 나만 잘 되고 잘 살면 무엇하나. 사회 환경이 살벌한 약육강식으로 맹수들의 정글지대로 화하여 살풍경의 난투장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종교로 만들어 버리니 종교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지도 못한다. 진리가 사람을 구원하고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데, 진리인 하나님 말씀은 무시하고 자기 구원만 생각하니 본능으로만 사는 금수와 무엇이 다르냐 하는 것이다.

사람을 너무 폄훼하는 것이 아니냐 하지 말 것은, 사람이 아름답다 하고 또는 숭고하다 하는 것은 하나님 지으신 대로 작동되는 각 사람 내부의 양심의 조화일 뿐이다.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완전히 절망적임을 자각하지 않는 한 구원은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의지가 주인이다. 선한 양심의 작동을 따라 나의 의지가 힘을 얻어 비상하게 되기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원동력뿐이다. 처음부터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새 창조가 그 답인데 곧 그리스도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한 몸의 구조에서 살아야 즉 진리인 삶의 법칙대로 살아야 한다. 거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이 운동을 벌여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사람 삶의 본을 보여 주셨다. 곧 자기 부인을 통한 사랑이다. 자기 부인을 토대로 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흉내만 내는 것이니 일종의 기만 행위이고 위선이다.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는 것이 자기 부인이므로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바탕에서는 누군가가 자기를 위하는 상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법이니 둘이 하나 되는 생명의 법칙이 그래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나님을 머리로 모시는 하나됨 곧 한 몸의 체제다. 하나님을 중심하는 것이므로 이는 그 말씀을 중심하는 것이요 그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확정되어 있는 성경 중심이요 성경을 중심으로 하니 성경에 나타난 사실대로 그 가르치심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 말씀대로 하면,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범죄의 대가는 죽음으로서 이미 인간은 범죄로 인해 죽음이 온 것이므로 그 죽음을 청산해야 하고 이 죄의 온상(溫床)인 자기중심을 척결해야 하는데, 이 둘을 해결하는 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다시 살아나심과 그래서 영원히 나와 하나 되는 것을 현실적으로 이루게 하는 성령 받음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또 이 방법으로 충분하니 최고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오묘하신 지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되는 것이니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고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 창조하신 대로 사람답게 살자는 운동이니 종교가 아니다. 종교의 형태를 띠어서도 안된다. 종교의 역할은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였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이미 끝난 것이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내세에 관한 것이다. 내세의 삶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내세를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 지금 이 시간의 생존이 급하고 문제다. 지금 이 시간으로 시작하여 사람부터 되자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애초 우리를 지으신 그 모습으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지금 우리는 그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오늘날의 비극적 현실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돌이킴이니 그 돌이킴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라 행동함이다.

행동에 이르기 전에 먼저 기본 바탕부터 새로 짜야 한다. 인간 삶의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것이니,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능력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태대로는 현재의 삶커녕 장래의 희망도 없다. 성경에 이미 그 영광스러운 삶의 방법을 적시해 놓으셨지만 그것을 바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너무 세상에 젖어 있었기에 눈이 어두워 깨닫지를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새 삶의 능력이 어떤 것이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힘이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 가운데서의 새 삶이다. 썩어져 버릴 인간이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의 기본 바탕을 이루어 주는 힘이다. 곧 하나님의 영[그리스도 친히 성령으로 자기를 나타내심]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 그 방법이다. 나의 영은 내 육체 안에 있다. 여기에다, 하나님의 영을 영원히 내 안에 모시고 함께 사는 일이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식을 우리가 먹으면 먹기 좋게 장만해서 먹는다. 날 것을 먹든 익혀서 먹든 요리를 하는 것처럼 하나님 친히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니, 이는 새가 그 둥지에 있는 새끼에게 먹이를 먹일 때 먹기 좋도록 해서 먹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각해보라, 미물인 인간으로서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을 내 안에 모실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엄청난 불가능이 아닌가.

그래서 내 안에 모시기 좋도록 그래서 영원히 모시고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일을 다 이루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던가. 하나님의 아들 친히 나와 같은 사람이 되시는 일이었다. 하나님 친히 나와 같은 사람이 되신 것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니 쉽게 말하면 제2의 나 자신으로서 나 자신이 하나 더 되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육체'로 보면 이 육체의 '영혼'으로 내 안에 계심이다.

사람은 원래 영혼과 육체의 이중 구조가 아닌가. 모든 믿는 사람 각각에게 이렇게 해 주심이니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출생하는 새 창조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러 수억 조라 하더라도 그 모든 인간 하나하나에게 그러한 <나 자신>이 되어 주심이다. 다시 말하면 이 새로운 또 하나의 <나 자신>을 내가 받는 것이니 그야말로 먹기 좋도록 해놓은 음식과 같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되어 내가 모시게 되는 하나님의 영을 각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시라 한 것이다. 선물이란 것은 항구적으로 내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르고 닳도록 내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즉 내가 모시는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또 하나의 나 자신’이 되셔서 나와 더불어 영원히 같이 사심이니 이야말로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합니다"[시 139:6] 함과 같다. 사실 이 시편 139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이러한 위치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은 모두 알다시피 이 말도 못하게 방대한 우주를 만드신 분이시니 다시 말해 이 우주보다 크시므로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어 우리 오관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영"(靈)이시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란 것도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 속에 친히 그 숨을 내쉬심으로써 영혼을 만드신 까닭이다. 하물며 하나님이신데 우리의 영혼보다 더 하시면 더 하시다.

이제 그 보이시지 않던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일은 실로 경천동지할 일대 사건이요 가히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최대의 감동', 인생 최대의 관심사, 생과 사를 가름하는 최대의 인생 주제(主題), 그 외 어떻게 필설로 형용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위해서나 이런 인류의 비극적 참상을 슬퍼함에서나 "심한 통곡과 눈물"[히 5:7]이 아니 나올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과연 이것이 진실인가, 아닌가 하고 만사 젖혀놓고 이 한 가지만이라도 한번 죽도록 고민해볼 가치가 있지 않으랴.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셨다고 했는데 그러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되셨지만] 하나님으로 계시기는 마찬가지시니 변함이 없으시다. 사람으로 계셔서 ‘제2의 나 자신’이 되어 계시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서는 영[하나님은 영이시므로]으로 항상 계시는 것이니 그래서 내 안에 얼마든지 오셔서 나와 함께 사실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되어 계시기 때문에 나처럼 그 육신이 있으시다. 그러나 그 사람되심이 제2의 나 자신이 되어 계시려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그 육신으로 계심 역시 ‘제2의 나 자신으로서의 모습’ 그대로이심에 변함이 없다. 즉 나 자신의 모습 곧 '사람으로서의 이 육체의 모습' 그대로이신 것이다. 단 이 세상에 계시던 모습의 육신이 아니라 부활하실 때의 그 모습 그대로의 신령한 몸이시다. 따라서 나도 반드시 그와 같은 신령한 몸으로 나의 육체가 변환되도록 정해져 있다. 이런 희망 가운데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달리 설명하면,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있으므로 이미 나의 몸 역시 신령한 몸으로서 지금 그렇게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지만, 그 영광을 뒤로 하고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아 고난 받는 이 세상 가운데 있으므로 내 스스로 나의 사랑[주님께 대한]의 자유 의지와 선택으로 이 뜻을 행하고 주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는 결의에 가득 차 있는 것을 가리켜 바울은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고 했고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했고, 따라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 하였으며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빌 3:8-14] 한 것이다.

내 스스로 그리스도를 알려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도록 하려 하고 내 스스로 부활에 이르려 한다 했으니, 마치 현재 자기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지도 않고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믿지도 않고, 현재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된 상태가 이 새 피조물로 다시 출생한 새 사람의 상태임을 부정하고, 자기 힘으로 그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들리나, 이는 구원의 양면성에서 그 한 면만을 보고 있는 탓이다.

피동적인 면과 그 반대인 능동적인 측면이 공존함이다. 우리가 새로 창조되는[“다시 나는”-요 3:3] 것이 전자이고 처음 창조 때나 새 창조의 경우에서나 온전히 자주 독립성을 갖춘 존재로 창조되어 있음이 그 후자이다. 전자에서는 내 스스로의 움직임이 필요 없고 있다 하면 오히려 장애가 되지만, 후자에서는 내 스스로 움직임이 필연적이고 이런 움직임이 없으면 오히려 내 구원에 장애 정도가 아니라 파탄이 온다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 창조[아담의 경우]에서나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창조에서나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말씀하시는 그 내용은 한결같다. 즉 “사람아, 주님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으니 주 하나님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올바른 것]를 행하며 인자[선을 행함]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하심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뜻을 충분히 보이시고 인간 스스로 그렇게 행하기를 바라심이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후자의 경우다. 전자를 거쳐 후자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인간만 아니라 자주 독립성을 구가하게 되어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그렇게 하신 것이나 이 원(願)을 이루어 드리지 않는 자들이 생긴 것이 곧 범죄자들이다. 이렇게 생김은 당연하니 처음부터 그들을 그렇게 온전한 자유를 누리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은 피조물을 만드셨는데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거룩한 천사들과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과 같은 악령들이 생긴 것으로서 스스로 그렇게 자기 자신들을 나눈 것이다. 불행히도 하나[아담 부부로서 짝이니 실은 둘이지만]밖에 없는 인간 역시 악령들과 같은 범죄하는 부류에 속해 버렸던 것이다. 새 창조에서도 당연히 이야기는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기계적인 생물체 같으면 한번 구원되었으면[피동적으로] 그대로 기계적인 작동을 해 나갈 것이므로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스스로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피동적으로가 아닌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주체 의식이 핵심이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시고 보여 주신 그대로 따라 가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하여 그렇게 움직이도록 해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간섭이 되고 강제가 되어 자유를 주신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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