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3운법칙

  • 3운법칙 계시판

Home > 3운법칙 > 3운법칙 게시판

제목 (3) 테일러, 피니, 네쉬 등록일 2016.02.24 13:07
글쓴이 kwontayseek 조회 401

집 교회 운동-CITHM[Church "In Their House" Movement]-찰즈 피니와 다니엘 네쉬-영국 웨일즈[Wales]의 이반 로버츠 비판
--------------------------------------------------------------------------------------------------


헛슨 테일러

조지 뮬러의 응답 받는 믿음의 기도에 감동 받은 영국의 헛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는 유명한 중국 내지[內地]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조지 뮬러와 동일하게 ‘응답 받는 믿음의 기도’로 운영하기로 하고 창설한 것이다. 사도 바울 이래 광대한 인구의 지역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큰 이상을 품고 선교 사업에 헌신한 이로서는 테일러만한 사례가 없다고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역사의 기록으로는 초대 교회 이후 지금까지 그의 선교회와 같은 대규모의 선교사업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테일러는 약관 22세에 의료 선교사로 처음 중국에 건너갔다가 거기서 순수한 복음 전도에만[의료사업이 아닌] 51년간 몸 바쳐 일했다. 산하 지역 선교부만도 205개처, 849명의 선교사를 중국 각처에 파송하였고[그가 죽은 6년 뒤에는 968명이었으니, 이는 당시 중국에 파송된 개신교 선교사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숫자], 700명의 중국인 복음 전도자를 양성하였고, 조지 뮬러와 같은 순수한 믿음의 기도로 당시 돈으로 4백만 달러를 모금하여 126,000 처에 달하는 중국인 자립교회를 세웠다.

그가 친히 세례 준 중국인만도 5만명에 달했던 것이니 이 모든 열매가 조지 뮬러의 믿음에서 감동 받아 그 본을 따라 자기도 순수한 기도의 응답으로 시종일관했던 사업의 결과다. 처음 중국에 의료 선교사로 갔을 때 많은 고생 중에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던 중, 기도와 믿음으로 새로 시작하라는 조지 뮬러의 개인적인 충고와 격려의 편지를 받고 조지 뮬러[테일러보다 25년 연상]의 믿음을 따르기로 작정한 것이 만25세 때였다.

뮬러 역시 25세에, 교회 교역자이지만 매달 정해진 사례비를 일절 받지 않는 믿음의 길을 내딛기로 부부 합심해서[결혼한지 3개월만에] 결정하고 목회(牧會)를 시작했던 것이다. 조지 물러는 그런 고아 사업 외에도 처음부터 국내외 선교활동을 돕기 위한 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던 것인데 네 가지 목적이었으니, 1). 주일학교와 같은 신앙생활로 인도하기 위한 목적의 여러 학교를 보조하는 것[해외 학교도 포함], 2). 성경전서나 신약성경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료로 기증하는 것, 3). 선교본부로부터 정기적인 급여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믿음과 기도로 응답 받아 생활하는 해외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돕는 것, 4). 영어 또는 각종 외국어로 쓴 좋은 전도지를 인쇄하여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었다.

실제 이상 네 가지 목표는 그가 타계하기까지 풍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다섯 번째가 고아사업이었던 것이다. 1874년에 기록한 조지 뮬러 자신의 증언대로 순수하게 믿음의 기도로 다음과 같은 결산 보고를 낼 수 있었다. "1년 예산 264,000 달러를 집행하고 있고, 2,100명의 고아[당시 수용한 숫자]를 맡아 양육하고, 189명의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있으며, 255,000파운드에 달하는 선교 후원금을 내었고, 117개 학교를 시작하여 도합 121,683명의 학생들을 전적으로 가르치며 도왔고, 전도지 배포만 해도 400만장이요, 성경[각국어] 배포는 연간 수십만[신약성경만 합쳐도 총 1500만부]에 달한다".

또 그가 받는 개인 수입이 연간 12,000 달러였고[기도 응답으로 송금해 온 것 중 기증자가 뮬러 자신을 위한 개인 용도라고 용처를 지정해 준 것], 그 중 자기와 가족을 위해서는 1,800 달러만 쓰고 나머지는 전액 복음 사업에 바쳤다. 또 그가 사업을 위해 고용하고 있던 사람은 112명이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이런 모든 예산이 어디서에서부터 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오직 아는 것은 주님께서 나의 무한대의 재정 담당자[Treasurer]시라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구하는 것처럼 그 때 그 때 필요할 때마다 구하는 것이므로 자금이 절대로 여분으로 남아 도는 일은 없었다. 고로 항상 빠듯하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채워지고 비워지고 이렇게 되풀이된 것이다. 그가 타계할 때 그가 남긴 재산은 무일푼이었으니 말 그대로 무소유로 살다가 간 것이다. 그가 목회하던 교회[Bethesda Chapel] 등록 인원 수는 2,000명이었다. 이 교회에서만도 63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했다. 10개처의 교회를 타지역에 설립했다. 고아원만 해도 일만명 인원 수용이 가능했던 5개동의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은 아무리 사정이 절박하고 궁해도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자기의 궁한 사정을 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로 알려드리는 것을 철칙으로 한 것이다. 헛슨 테일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될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만 70세 되던 1875년서부터 뮬러는 사업을 사위에게 모두 일임하고 젊었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해외 선교사로서의 해외전도에 나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녔는데 앞에 소개한 것처럼 도합 16회나 계속되었다. 81-83세 때는 일본과 중국도 다녀갔다.

17년간에 걸쳐 42개국을 돌아 3백만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3,000명의 고아들을 확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만들었다. 조지 뮬러 부부가 조그만 교회에 부임하여 왔을 때부터 평생토록 고정된 사례비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 25[어떤 기록은 27세]세 때였는데 그 후 시종일관해서 이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교회를 맡아도 그냥 헌금함을 입구에 놓아두고 교회 식구들이 자진해서 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의 사업에서든 가정 일에서든 빚을 내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물론 저금하는 일도 일절 없었다. 조지 뮬러는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걸어 다닐 때에도 누워 있을 때도 누웠다가 일어날 때도 항상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았으니 즉 주님과의 간단 없는 대화(對話)였다. 그리고 응답은 반드시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한번 옳다고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결정한 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거의 7년을 두고 계속 기도한 결과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기도한다고 즉답을 받는 경우도 물론 많지만, 인내와 무한한 참을성과 하나님의 영광과 뜻에 대한 확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부단한 점검 등 이런 것이 결정[結晶]을 이룬 종합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타나고 절대로 배치되게는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말씀을 떠나서는 그 어떤 성령의 인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뮬러의 평생의 확신이었다.

뮬러는 찰즈 피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성경에 대한 주석서 따위는 아주 멀리 하고 다른 책도 거의 손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만을 가까이하고 열심히 탐독했다. 평생을 통해 200독[어떤 기록에는 100독]은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 읽는 때가 많았다. 성경을 읽는 대신 성경 주석서나 사람의 생각으로만 된 책을 읽기 때문에, 항상 믿음 안에서는 어린 아이로만 머문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다.

"너희 믿음대로 될 것이다"[마 9:28,29] 하신 말씀을 따라 역사상 숱한 믿음의 기도에 대한 놀라운 응답 사례가 있었지만 이와 같이 거의 한평생 50여년을 순전히 기도 응답으로 그런 거창한 사업을 이루었다는 것만 해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일하심이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다른 것은 낱낱이 샅샅이 들여다 보기를 원하면서도 이것만은 살펴보기를 원치 않으니 순수하게 고의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찾고 구하고 두드릴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진리는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증거 저런 증거가 숱하게 늘려 있어도 이를 철저히 수집하여 모아 연구할 생각은 않고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그 증거가 없지 않으냐?"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이것 자체가 또한 하나님 계심을 전율할 정도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무리 쉽고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증거가 지천으로 쌓여 있고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를 보지 못하게 하시고 깨닫지 못하게 하시고 눈 어둡게  하시면 사람 스스로 이를 절대로 볼 수도 알 수도 없음이다.

왜 보지 못하게 하시며 이렇게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감기시는가, 그 대상이 누구인가 하면,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권력자들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함과 같다"[고전 2:8]고 한 그대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후 4:3] 하였으며,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니, 그 중에 이 세상 신[神,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라"[:4,5] 함과 같으니,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활동하여 눈을 가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의 처사는 자기의 자유 의지로 그 많은 인생들로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을 따라 되어지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짐이다. 누가 그 뜻을 막으리요. 비록 각자[자유 의지를 행사하는 피조물]가 자기의 자유로운 의지대로 하는 것이지만 이미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그것을 굳이 강제하시지 않고서도 그 앞서 판단하시고 미리 아심을 따라 자기 뜻을 차질없이 이루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믿지 못하게 조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 스스로가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기를 싫어하기[요 3:19] 때문에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마음 놓고 조종하는 것이다[고후 4: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회개하여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은 열려져 있으니 하나님에게서 배우고 그 인도하심을 받은 자들은 오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러면 진리를 나타내시느냐 하면 진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하나님은 진리시고 생명이시고 그 생명과 진리에 이르게 하시는 길(방법) 자체이시다-요 14:6]에게 계시로써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사람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눈을 열어 알게 하셔야 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부정하고 성경의 모든 진리에 코웃음 치는 모든 이들은 스스로 자랑할 것은 실상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에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그 눈으로 보지 못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즉 성령께서 유일하게 가르치신다고 조지 뮬러는 믿었다. 말씀의 뜻을 바로 깨달아 그 영적 삶의 풍성을 기하기 위해 하루 2, 3시간은 보통으로 기도한다는 기록을 그의 비망록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비상한 능력과 사업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 짚어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5리를 가자 하거든 10리를 가주라든가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눅 6:29]든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등의 주님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으로 뮬러는 믿었다.

왜냐면 우리가 이 세상 살기 위해 이런 자연계에 속한 몸으로 있는 것이라면 살 권리를 지킨다는 차원에서도 그런 부당한 것을 제지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겠지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 즉 그런 사람 하나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그 말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따라 행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던 것이다.

물러가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된 것은 20세 되던 해 친구의 권유를 따라 어떤 그룹[그룹을 지어 모이는 가정 교회 또는 집 교회]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이 계기였다. 당시 프러시아[지금의 독일, 뮬러는 영국인으로 활동했으나 태생은 독일이다] 국교는 성직자 외의 평신도가 설교하는 것을 금했다. 때문에 그 집회에서는 인쇄된 설교문을 단지 낭독하고만 있었다. 그러나 거기 모인 사람들의 기도는 아주 남다른 것이었다.

지금까지 뮬러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광경을 보지 못했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고 이는 뮬러에게 큰 충격이었다. 여기서 깊은 인상을 받고 그 밤에 그리스도 앞으로 진정으로 나아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 자신 술회한다. 생활보장이 된다는 이유로 그 부친의 뜻을 따라 당시 국교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과 학생이 되어 있었으나 믿음과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조지 뮬러나 헛슨 테일러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인이 과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느냐, 죄를 짓는 것이 성경적이냐 따위의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왜냐면 조금이라도 죄를 짓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될 때는 기도 자체가 응답이 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믿음의 기도와 그 응답으로 엮어지고 있는 터에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가 그 비결이므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실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매사 매건 기도로 살던 "홀리 앤"[Holy Ann, Ann Preston]이라든가, "기도자 하이드"[Praying Hyde]라든가, 찰즈 피니, 기타 믿음의 기도로 시종일관한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되어 있다. 기도 응답이라는 것은 과거지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언제나 현재의 생활 자체였기 때문이다. 헛슨 테일러나 조지 뮬러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여 그 뜻만을 찾아 자기 부인에 철저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느니, 세상에 있는 한 "육신대로 살"[롬 8:13] 수밖에 없다느니 하는 변명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명령이나 기타 경고를 따르지 않음을 그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 된다. 믿음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일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무익하니 사랑도 순종도 믿음도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저주를 받아 멸망에 들어간 사람들은 과거에 머물고 있던 이들임을 주님의 비유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마 7:22].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무서운 선고는 과거의 그들의 행위를 부인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그들에게 내리시는 판단이신 것이다. 그들의 주안점은 ‘과거’인데 반해 주님의 보시는 시각은 언제나 ‘오늘’, 이 현재이다. 과거에는 아무리 주님을 알았다 한들 지금 이 시간 주님을 몰라보는 행동을 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 어이 하랴. 사랑이란 것은 원래 현재를 기준하는 것이지 과거나 미래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들의 생애를 훑어 나가면 "믿는" 것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우리는 배우고 깨닫게 된다. 물론 그들 역시 성장 단계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와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성경대로의 정상적인 삶의 위치로 복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 뮬러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넘치는 기도 응답의 능력을 아니 느낄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관련 번역서가 소개되어 있지만, 이런 믿음의 거장들이 우리나라에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앞서의 지적대로 장로교파와 감리교파가 워낙 드세어, 그렇게 기존 교회 틀을 깨고 자유로이 예배하는 형식을 배타적으로 대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마치 개미가 그 물었던 먹이를 [목을 끊어놓아도] 그대로 물고 놓지 않는 것처럼 시종일관해서 붙들고 늘어진 점에서, 헛슨 테일러와 조지 뮬러 등 이들 믿음의 사람은 공통이다. 조지 뮬러가 그렇게 "물고 늘어진" 약속의 구절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이다"[빌 4:19]였고, 헛슨 테일러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할 것이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그런 기도로 하나님과 막힘 없는 교제를 할 수 있었던 사실에도 보듯이, 자기 부인이 철저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실을 누구 못지 않게 깊이 인식하고 있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한 상태로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거둔 열매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그 엄청난 결과를 이루면서도 항상 겸손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어린 아이처럼 달라고 하여 얻어 쓴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고 오직 하나님의 수중에 놓인 도구(道具)라는 자각만이 철저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관리하시고 주재하시고 운영하는 것이므로 그들 자신은 단지 "구하고" 그리고 "받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고 믿은 것이다. 헛슨 테일러의 기도는 선교 자금을 위한 것과 더불어 일꾼 보충이었다. 돈만 아니라 사람을 보내 주시기를 구하였고, 그 믿음으로 놀랄 수밖에 없는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다.

그가 많은 선교사들을 중국 본토 선교 사업에 보냈으나 자기처럼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근거로 하여 기도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게 하는 믿음의 기도 응답의 선교 사업의 방침으로 정하여 여기에 동조하고 그런 동일한 믿음으로 나가기로 작정하는 사람들만 뽑아 중국 선교지로 보냈던 것이다. 교회 역사가들은 테일러처럼 많은 사람들을 선교지에 보낸 선교 사업들은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1907년 한국 부흥

1907년 한국 부흥은 국내외 전도를 막론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役事)가 나타나 주시기를 그야말로 집요하게 하나님께 간구하면 돌같이 굳어진 심령들이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역사적 산 실례요 증거이다. 이런 성령의 나타나심은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 중에서나 이미 복음을 듣고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다 함께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다. 찰즈 피니의 경이적인 성령의 역사의 결과는 금식을 겸한 시종일관하는 설교자 자신의 기도 그리고 그를 기도로써 돕는 기도자들[아래에 소개할 다니엘 네쉬 등]의 기도로 나타나진 것으로써 괄목할 만한 것이다.

조지 뮬러의 기도의 생애, 헛슨 테일러의 선교활동, 1907년 한국 주재 선교사[장, 감 합동으로 20명 가량]의 한국의 영적 각성(覺醒)을 위한 기도, 찰즈 피니의 전도 활동, 하이드[Praying Hyde]의 기도 등은 무릇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업에 나서는 자이면 마땅히 따라야 할 본보기다. 전투를 총 지휘하는 사령관이 그 휘하 부대원들에게 필승의 전술, 전법(戰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것이 효과가 있음을 미리 증명해 줌과 같은 것이다. 전투하는 자로서 이를 따르지 않고 어찌 전쟁에 임한다 하리요. 마땅히 복종만이 있을 따름이다.

1907년 한국교회 부흥 이전에는 선교사들 간에 교파 관념도 강해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차별의식으로 서로를 대해 온 것도 사실이었으나 그러나 이 때 매일 정오를 기하여 연합 기도로 모이던 두 교파 선교사들은 기도 중 전혀 그런 교파 장벽을 느끼지 못했음이 특징 중 하나라 했었고, 먼저 그것이 그들에게 찾아온 첫 큰 변화였다고 한다. 초교파로 나간 테일러나 뮬러 같은 인물들을 여기 소개하는 이유도 그런 기존 틀에 얽매인 교파 관념을 타파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찰즈 피니의 부흥 집회에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집회를 위한 집중 기도에 힘쓴 다니엘 네쉬[Daniel Nash, 1775-1831] 또한 우리의 본이 된다. 그는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 in Connecticut]를 졸업한 후 토착 인디안들과 유럽 이주민들을 상대로 한 선교 사업을 위해 감독교회[Episcopal Church] 신학교에 들어가 1801년 졸업하여 부부가 함께 선교 활동을 했다.

남편은 설교를 맡았고 아내가 복음 찬가를 부르며 전도를 했다. 40세가 되어서는[1816] 연합교회[Congregational-Pressbyterian, 조합교회와 장로교회가 연합한]의 목사로 부임했다. 처음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성공적이어서 첫 해만 해도 70명의 결신자(決信者)를 얻었고 만 3년 후에는 새 교회당도 지어 올렸으나 6년 뒤에는 "나이가 많으므로 보다 젊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교인들의 투표 가결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 후로는 심한 영적 갈등으로 거의 구제불능 상태에 빠졌으나, 두 눈 모두 극심한 고통의 염증으로 인한 안질(眼疾)을 앓아 몇 주간 깜깜한 방에 갇혀 있게 되면서부터 오로지 기도에만 열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눈이 낫게 되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다시 헌신하리라는 결심을 하나님 앞에서 하게 된다. 이 퇴직 목사의 "하나님 일"은 개인 전도나 부흥 전도 강연이 아니라 "기도로 사투(死鬪)하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찰즈 피니의 집회에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기도의 밑받침이 되어 준 것이다.

그가 안질을 앓게 된 것은, 30세 전후의 피니가 회개하여 믿음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의 변호사 업무를 버리고 말씀의 전파자가 되고자 하므로 그에게 목사 안수를 주기 위해 열렸던 그 지방 노회에 노회원으로 참석하여 처음으로 피니를 알게 된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 후 네쉬는 줄곧 피니와 함께 줄기차게 기도로써 "청중들의 마음을 녹아 내리게 하시는"["to melt the crowd"] 성령의 능력을 갈망하는 동역자(同役者)로서 일하는 기도의 노고(勞苦) 중에 56세로 운명하기까지 7년 간을 피니와 함께 한 것이다.

처음 피니와 대면했을 때 네쉬는 48세인데도 나이 많다고 하여 "파더[Father] 네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복음 전도의 말씀을 전파하면서도 피니 자신 금식 기도[자기의 전도 설교에 능력이 빠져 나갔다고 여겨졌을 경우] 등 쉴 새 없이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주장 말씀 전도로써 집회를 열었고, 네쉬는 이 집회와 설교자를 위해 전적으로 기도에 힘을 기울이는 전도 팀을 이루었던 것이다.

네쉬는 혼자 기도하는 때도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대로[마 18:20] 합심 기도로써 힘써 함께 기도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 중에 네쉬와 같은 기도의 심정과 열정을 지닌 특별한 사람이 아벨[Abel Clary]이었다. 주로 이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하거나 기도의 중심이 되거나 했다. 이들 전도 팀은 교회에서 특별히 초청하지 않는 한 교회당에서 집회를 여는 일이 없고 학교 등 어디서나 장소를 빌려 집회를 열었다.

말씀 전파를 위한 특정 지역을 정하는 것이나 그 집회의 성공을 위해서나 반드시 기도를 선행(先行)시키는 것으로 철칙을 삼았다. 그래서 집회를 시작하려는 도시나 읍 단위의 지역이 있으면 피니는 네쉬를 먼저 그 곳에 보내어 기도로 사전 준비를 하게 하는 때가 많았다. 기도를 시작하면 3,4 주간을 계속 그 곳에서 기도하는 때가 보통이었다. 네쉬는 그런 곳에 가면 자기와 기도 약속을 할 수 있는 두세 사람을 먼저 찾았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 언급한 기도의 사람 아벨과 함께 하였다. 그리고 피니의 집회 동안 시작부터 끝까지 기도하는 때도 있었다. 한 곳에서의 집회에서는 집회 전 이들 두 사람이 어떤 가정 집의 캄캄하고 습기 찬 지하실을 한 주간 25 센트씩 두 주간 세를 내어 거기서 기도했다. 피니의 집회가 최소한 두 주간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기도라는 것이 말 그대로의 전투였다.

이런 일화도 있다. 피니가 부흥 전도 집회를 열기 위해 시내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 도시의 한 숙박업을 하는 부인이 찾아 와 하는 말이, "파더[father]" 네쉬라는 사람이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지금까지 사흘을 숙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기에 이상히 여겨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니 모두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러져 있어 신음 소리만 내고 있으니 무슨 큰 변이 났나 싶어 무서워 감히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모르는데 혹 "파더 네쉬"라는 사람을 아느냐" 하며 "와서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피니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분들은 지금 기도의 진통[陣痛, 産故, travail] 중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피니는 이와 같이 그 전도 집회에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소망하였기 때문에 그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자 했던 장소로 먼저 기도의 사람 네쉬를 앞서 보내어 기도로써 준비시키기를 버릇처럼 했었다. 네쉬는 피니의 전도 집회 예정지에 먼저 나아가 그 집회를 위해 기도 준비를 하는 것만 아니라 때로는 집회 중에서도 계속 그 집회를 위해 기도했다.

오늘날은 전도해서 결신자의 20프로만 지속적으로 믿음을 지킨다고 해도 성공이라고 말한다지만 피니의 집회에서는 80프로가 믿음에 충성하는 자로 남았던 능력의 비결이 피니 자신의 능력 있는 전도 설교에도 있었지만 똑같이 네쉬를 비롯한 이들 기도자들의 기도의 능력이 바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피니가 대중 앞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강력히 전달할 때에는 그 이면에는 그 인근 모처[그것이 집이든 외진 숲 속에서든 상관이 없었다]에서 남 모르게 기도하는 네쉬의 눈물과 산고(産苦)의 진통의 신음[groaning-롬 8:23, 우리말 번역 "탄식"은 잘못된 번역이니 해산 중의 고통의 소리를 의미함이다] 소리가 토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집회 도중에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나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가 있을 때는 피니는 언제나 네쉬에게 그 사정을 알리고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 장애를 제거하시리라는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로 매달렸다. 그러면 반드시 그 장애는 걷히곤 했었다. 때로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네쉬가 직접 행동에 나설 때도 있었다. 네쉬는 천성적으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때로는 당돌함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회 내내 일단의 젊은 이들이 있어 집회를 방해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것 외에는 이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피니와 네쉬는 이 일을 위해 인근 숲 속에 들어가 함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 마침내 확신이 왔다. 그 날 일요일 저녁 집회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보통 네쉬는 집회 중에도 따로 떨어져 있는 가정 집이나 기타 장소에서 기도로 씨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집회에 참석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가 마칠 즈음에 네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젊은이들이 보통으로 집회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 같이 똘똘 뭉쳐져 집회를 망치기로 작심한 것 같았다. 이 사실은 청중들 모두가 알고 있는 터였다. 네쉬는 일어나 아주 간곡한 말투로 그 젊은이들이 현재 취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심각한 죄악이 되는지 그리고 어떤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게 되는 것인지 알아듣게 타이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을 마칠 즈음에 자기도 주체하지 못하는 듯이 다음과 같이 토해내듯이 말했다. "날 봐요, 젊은이들! 일주일 안으로 당신네들 말이야, 몇 사람 회개시키시든가 아니면 몇 사람 지옥으로 보내시든가 당신네들 그룹을 묵사발을 만드실 거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거요!" 네쉬가 일어서서 말을 하고 있을 때 앞 의자를 손으로 잡고 있었는데 이 때 그 의자가 부들부들 떨리며 삐걱거릴 정도였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 앉아 머리를 떨구고 고통으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간장을 다 쏟아내는 듯하는 기도로 이어진 것이다.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피니가 보니 젊은이들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네쉬가 너무 지나쳤다고 피니는 생각했다. 일주일 안으로 몇이 죽든지 아니면 회개하든지 한다고 단언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 주 화요일이 되자 그 그룹의 주동이 되는 젊은이가 피니를 찾아 왔다. 심적 고통이 완연했다. 피니의 인도로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어린 아이처럼 되어 죄를 자복(自服)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이제 어떻게 할까요?" 했다. 피니는 "지금 곧 가서 같은 동아리의 나머지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을 권하여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그는 돌아가 그대로 했다. 마침내 그 일주일이 다 지나가기 전 그들 전부가 아니면 거진 모두가 회개하여 믿게 된 것이다.

네쉬의 기도는 피니의 설교만큼이나 이와 같이 독특한 것이었다. 변호사 출신의 피니 자신의 조리 있는 말씀 전파의 힘보다도 피니는 네쉬와 아벨과 그 외 이름 모르는 기도자들의 기도의 힘에 더 의존한 것이다. 그리고 말씀 전파의 성공의 열쇠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쉬와 그와 함께 한 기도의 동역자들의 산고와 진통의 기도는 그리스도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에의 동참이라 할까 어쨌든 다니엘 네쉬의 7년간의 기도의 몸부림으로 찰즈 피니의 복음 전도가 그와 같이 강력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니 이런 것 역시 하나님 실존과 성경의 진실성의 증명인 것이다.

어떤 이가 피니에게 묻기를 "파더 네쉬"가 어떤 사람이냐고 했다. "우리는 그를 좀체로 만나기 어렵습니다. 어떤 집회에서든 그가 참석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하니 피니가 대답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다 그런 것처럼 '파더 네쉬'는 아주 조용한 분입니다. 수다를 떨고 많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절대로 기도를 잘 하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기도의 성격상 오직 하나님과만 상관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눈이나 귀를 의식하지 않는 호젓한 곳을 찾게 마련이다.

네쉬는 기숙하고 있는 집의 곳간, 지하실, 혹은 후미진 작은 내실, 또는 근처의 떨어져 있는 집이나 숲속을 기도처로 삼아 홀로 또는 소수의 몇 사람과 함께 기도했다. 그가 비록 홀로 떨어져 기도했으나 그가 기도한다는 사실이 대개 쉽게 알려지기도 했다. 심령의 깊은 고통에서부터 분출되는 기도 소리가 거침없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니 이는 네쉬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었다. 그 숙박업 여주인이 바로 그런 광경을 목도한 것이다.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이전글 | (2) 죠지 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