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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9) 메시아 교회 등록일 2016.02.28 19:21
글쓴이 김일동 조회 370

메시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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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의지와 인격성은 동의어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구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심도 되는 것이니[롬 5:8] 이는 나의 자유의지로써 내가 그 확실한 증거를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그렇게 사랑을 유도해내시기 위함이 아니라면 그런 확증이 필요가 없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래서 죄를 지어도 나를 그냥 사랑하셔서 영생을 주시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사랑에 있고 사랑은 순종을 낳게 되고 따라서 순종하지 않으니 사랑이 없음이요 사랑이 없으니 범죄함이요 그래서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이 죽음에서 나를 구원하실 때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근거를 함께 제공해 주신 것이다.

갖가지 성경 구절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이상과 같이 생각해 나가면 그리스도의 의로우심 자체가 나의 의로움으로 간주될 수도 없고 간주되어서도 안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불순종이 불의요 범죄행위이니 이 의는 순종을 의미함은 당연하고 따라서 주님의 순종 자체가 나의 순종으로 간주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님의 죽으심도 내 죽음, 주님의 부활도 내 부활, 주님의 승천 및 하늘 권능 우편에 앉아 계심도 내가 그렇게 현재 앉아 있는 위치요 신분이다. 주님의 생명 자체가 나의 생명이다.

그러나 단 하나 주님의 자유의지가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고 따라서 그의 순종이 나의 순종으로 간주될 수 없고 그러니 그의 의가 나의 의로 여겨질 리도 없다. 만일 그렇다면 주님이 곧 나이고 내가 곧 주님이라는 말과 같이 된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누가 그런 말을 하겠는가. 역시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의 순종이 나의 것으로 간주된다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은 자기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행 5:32].

여기서 자기를 순종하는 자라 함은 지금까지 순종해 온 '사실'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를 통한 순종의 '약속'을 근거로 해서 하는 말임을 분명히 인식할 일이다. 그러면 무엇이냐, 사랑은 내가 해야 하고 순종은 내가 하는 것이지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셔서 순종하시는 것은 아니니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순종하신 것처럼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히 5:9). 그럼에도 희한한 말을 꾸며내어 그리스도의 순종이 내 순종이라 여김으로써 여전히 순종하지 않는 사람, 순종하기를 등한히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하시지 않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만 하기만 하면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 "그러면 그것은 행위로 구원 얻는 것이지 어찌 믿음으로 은혜로써 구원 얻는 일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역시 이쪽도 되묻고 싶다-"그것이 어찌 행위로 얻는 구원인가?".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어렵기만 한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간다"는 말을 간다는 의미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거기에 가령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도 한다면 생각해보라,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학문'이 되겠는가.

그렇게 될 바에야 누가 그런 말이 나열되어 있는 글을 보려고 마음인들 먹겠는가.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은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 중에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는데 이런 종류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렇게 대중없고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의 나열인 성경을 누가 들여다볼 생각이라도 하겠는가. 때문에 그 방면에 교육을 받아 훈련을 거친 특수 계층이라야 말씀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여, 어부 같은 무식자들을 사도로 삼으신 뜻에 반하여, 거창하게 학문으로 만들어놓고 신학교를 세우고 신학자를 만들고 그 결과 성경은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도 일반인으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떼어놓는 데에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은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은 얼마든지 그런 신학자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죽었다"고도 말하게 한다.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 자신이 하는 일이지만 이쯤 되면 그 스스로도 퍽 재미 있어 할 일이니 그만큼 인생들이 어리석기가 한이 없다는 뜻인데, 이 어리석음의 원인은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치를, 치러야 할 모든 것을 다 치러 주시고 이제 내 생명이 되셨다는 것도, '내 대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라는 사실을 그들은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대신'이라면 나는 죽지 않아도 되고 여전히 나는 나이고 따라서 물에 물 탄 듯이 되어 있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함께'라면 과거의 나["옛 사람"]는 이미 죽은 것이다. 과거와는 일체 모든 것이 단절이다. 다시 말해 물이라면 기름으로 다시 출생한 것이요 기름이라면 물로서 다시 만들어진[창조된] 것이다. 그래서 "새 사람"이다. 물에 물 탄 듯이 되어 있으면 그것은 구원 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성경에 너무나 자세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것마저도 이런 식으로 해석이 나가니 다른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여자 지능지수가 남자보다 4포인트나 낮다는 연구 발표

2003년 11월 10일자 런던의 더타임즈(The Times)에서 영국 얼스터 대학교 심리학교수 리처드 린이 핀란드 모교수와의 합동으로 특이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지금까지는 인종, 민족, 성별 지능지수 조사연구는 특정 부류의 우월성 내지는 차별 이론을 조장한다 해서 금기시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그런 차이가 없고 평등하다는 식으로 나와 그것이 통설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많은 심리학자들의 세계에서는 나라별 그리고 남녀별 지능지수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실정인 바, 그의 이론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들보다 IQ가 낮다는 것이다.

16세 이전까지는 여자가 더 조숙하므로 같게 나오나 그 이후의 연령 대에서는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인 남녀 사이에는 4 포인트로 격차가 벌어진다고 한다. 국가별로는, 185개국 중에서 홍콩이 1위, 한국이 2위, 북한과 일본이 3위로 그 등급을 매기는 등 자국이나 자국 계열의 서구 제국보다 동북아 국가의 민족이 지능적으로는 더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형편에(홍콩은 도시 국가를 형성하고 있고 또 중국에 속했으니 국가별로 따지면 한민족이 최고라는 결론이다) 지능문제를 집중 연구하는 이름 있는 학자로서 그런 성별로 나타나는 차이에 조작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여기서 맹목적으로 남자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다. 스스로를 열등국민으로 자처하고 무조건 서구 문화를 따르는 것이 선진화인 양 덤벙대어 양성평등이니 하는 말들을 하니 어이가 없어 하는 소리다. 어느 연구 발표에 따르면 양친으로부터 자식들에게 물려지는 육체적인 요인 중에 모친의 것은 부친의 것에 비할 때 무려 90%를 상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것을 그들의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나 정답은 오히려 그 반대다.

왜냐면 사람의 구조는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양면성을 이루어 있는데 이는 여자가 그 육체적인 쪽으로 쏠려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면 영적이고 정신적인 쪽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결론이다. 이런 것이 균형 감각을 살리는 자료 해석이다. 정신적인 것보다 육체적인 것이 상위에 오를 수는 없는 것이 짐승과는 다른 인간의 특징이므로, 따라서 남자는 여자보다 더 근본적이고 기본적이고 본질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양면성에서 대등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삼위일체의 원리에서 주종(主從), 대소(大小), 인과(因果)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남자가 대요 주이고 여자는 중이요 소인 것이다. 남자가 '인'이요 여자는 '과'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밝히고 있으니 왜냐면 남자를 소재로 하여 여자가 창조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아도 남녀는 형평을 이루어야 하는데, 육체적인 측면에서 자녀에게 물려 주는 쪽이 여자가 우세하다면 그러면 정신적이고 영적인 측면에서는 남자가 당연히 우세하다는 증명이 된다.

단지 영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은 말 그대로 영적인 것이므로 물질로서의 육체처럼 과학적 분석이나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면 된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로서 남자와 여자 같이 닮은꼴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서 대등한 것은 없다. 반드시 주종, 대소, 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삼위일체의 원리의 설명에서 이미 밝힌 사실이다. 그래야 조화가 된다는 것은 상식 수준의 판단이다. 대등하면 동격이라 주도권 싸움에 화합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핍박을 당했으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렇게 극심한 핍박을 받았지만 명맥을 유지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리고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세상 종교 같으면 그런 식으로 핍박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면 벌써 오래 전에 사라졌고 지금쯤은 기록상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을 그런 혹독한 변을 그리스도의 교회는 치러 오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발도 또는 왈도 교회(Waldenses)라고 하는 집단이었음을 앞에서도 밝혔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를 신봉하는 서구 국가가 늘어나면서 로마카톨릭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고 이들 소수의 무리는 그동안 각종 개신교단에 흡수되었지만 지금도 그 이천 년 가까운 전통을 버릴 수 없어 그 이름 그대로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개신교가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격이어서 천주교가 '어머니'교회라고 천주교 신자들은 인식하고 있지만, 종교 개혁 이전에는 세상이 천주교만을 기독교로 인정해 왔던 것이다.

천주교 역시 정치 권력을 등에 업었을 때는 천주교의 교리를 수용하지 않는 집단들을 종교적 이유로 박해를 가했던 과거 서구의 종교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약소 집단들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이름이 있을 까닭도 없는 것은 그들 스스로 교파(종파)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을 따름이었기에]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어 왔기 때문에, 심지어는 개신교측 교회사에서조차도 이들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기커녕 거의 들먹이지도 않는 그런 실정이다. 

사실상 그들에 대한 기록마저도 천주교 쪽에서 악평한 것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그래서 아주 잊혀지다시피 하고 있다. 예컨대 이 왈도교회라고 하는 집단은 왈도라는 특이한 인물이 나기도 전인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국가적으로 인정하기 전에도 핍박 받는 교회 전통과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물려받음으로써 대부분 교회가 세속화의 길을 걸으며 미신 집단으로 변질되는 중에서도 거기 물들지 않고 버티던 본류(本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도대체 물려받는다느니 본류라느니 하는 말부터 성경적으로 말하면 어폐가 있다. 원래 그런 것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 나타나시는 성령의 계시와 인도를 받으면 누구나 그들이 교회 본류이기 때문이다. 왈도 또는 발도파 교회(물론 로마카톡릭은 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그냥 '왈도 추종자들'[Waldenses]이라고만 한다)의 이름의 어원은 영어로 '골짜기 또는 분지'의 의미인 valley의 라틴어 VALLIS에서 나온 것으로 프랑스어 및 스페인어로서 valle, 이태리어로 valdesi 등으로 불려지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Valdenses, Ualdeases" 또는 "Waldenses"라고 하는 것은 분지 주민들"이란 의미이고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하기도 한다. 알프스 산맥으로 둘려진 피레네(Pyrenees) 분지 주민들은, 9세기 경 발도(Valdo)라는 사람이 카톨릭 신앙을 전하기 전에는 카톨릭과는 무관했는데, 발도는 그 지방 유력자로서 상당한 추종자를 거느리던 베렝가리우스(Berengarius)의 친구이자 고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30년 후에 리용(Lyons)의 한 부유한 상인이던 발두스(Valdus) 또는 왈도(Waldo)라는 사람이[리용의 전도자 발도와는 무관] 공개적으로 카톨릭을 비판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게 됨으로써 그의 이름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고 전해진다. 

세상 종교들은 간혹 지역과 나라에 따라서 핍박을 받는 수가 있어도 그것이 국가적 종교로 지정될 경우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혹 핍박을 받더라도 그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고 그 종교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그대로 번창 일로에 있게 되니 국가적 배경을 마다할 리 없고 오히려 최상책으로 여길 것은 당연하다. 불교가 그렇고 이슬람교가 그렇다. 그리고 천주교가 그렇다. 이 천주교가 국가 권력으로 자기네 교리[그 주된 특색으로 말하면 '마리아'를 중보자로 삼는 것]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이들을 학대하고 야만적인 박해를 가한 것이다.

주님의 예언 말씀대로 그들은 그렇게 핍박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라 한 것이다. 지금도 그런 정치적 색채에는 변함이 없으니 로마 교황청이 국가 대우를 받고 있음이 그 증거 중 하나다. 소위 개신교에 속한다는 사람들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현재의 개신교가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어 그 이전에 위클리프, 허쓰 등을 중심으로 혹간 복음운동의 횃불을 들었을 뿐 그 이전에는 전혀 불모지로 여기고 있으나, 실상은 위의 설명처럼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

'개혁'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혁할 필요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대로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각시대 각 증인들의 증언[각자 자기의 구원 받은 실상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건재해 온 것이다. '개혁'이란 말이 의미가 있다면 기존 종교를 개혁했다는 뜻이니 하나님의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단어다. 이방 종교의 각종 미신과 우상 숭배 등을 조합한 "기독교"라는 이름의 한 세상 종교 집단을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또는 "그것이 변질된 것"이라고 착각하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다.

"종교개혁"이라는 말 자체에는 하자가 없다. 왜냐면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한 세상 '종교 집단'의 '개혁'이기 때문이다. 세상 종교는 따라서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이 자기 일이고 자기 편인데 박멸하려고 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원래 그가 처음부터 원수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천 년 이상을 내려오면서 부단히 그 씨를 말리려고 작심하고 그 오랜 기간 모든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덤볐던 것이다.

세상 종교 같으면 그런 정도의 거국적이고 세계적인 박해를 받았다면 벌써 오래 전에 자취도 없이 사라졌을 것임을 다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사를 읽어보면 가관이 아님을 누구나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천주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핍박한 사례는 겨우 조지 폭스의 "순교자의 이야기"에서 약간 비치고 있어 그 정도의 지식만 갖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실정이다. 천주교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런 형언할 수 없는 박해 중에도 오히려 살아남아 더 힘을 얻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적 자체요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자체 증명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그런 능력을 알기를 바라서 이런 사실도 강조함이다.

유대민족이 이천 년 동안 나라 잃고 떠돌다가 오늘에 이르러 마침내 나라를 얻게 되는 사실과 쌍벽을 이루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고로 이 "왈도파"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밝히면 이렇다. 그런 교회도, 천주교가 "성모 마리아"라고 극진히 위하는데 대해서는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를 알리는 거의 모든 기록 자체가 로마카톨릭 계통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실 은폐'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따라서 신빙성은 덜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점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기껏해야 그들이 무엇을 믿는가를 대외적으로 밝히기 위한 자체 내에서 작성한 글인데도 몇 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을 보면 마리아를 천주교와 같은 투로 말하고 있음을 본다. 즉 "동정녀 마리아"라 하고 그를 "거룩하고 겸손하고 은혜가 충만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는 덧붙이기를, "마리아도 모든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인가. 그리고 "거룩하다" 또는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데도 이들은 로마카톨릭에서 말하는 소위 성인(聖人)들의 축복 또는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 등은 미신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리아 숭배가 주후 600년부터 시작되었다 하고 있으나 이미 그 이전부터 마리아를 숭상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반대하면서도 마리아에 대한 것은 일언반구도 나타내지 않으니[이들 자신들의 기록에서나 그들을 핍박한 로마카톨릭의 기록에서나], 그렇다면 그들은 마리아에게는 기도하고 그 축복을 바라고 있었다는 말인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방금 소개한 그들의 신조라고 하는 조목에서 그런 "동정녀 마리아[천주교에서 하듯이 대문자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예수님 탄생시의 동정녀 즉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화된 항구적인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라고 하는 명칭 자체가 그런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마리아를 "거룩하다" 했으면 누구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다 그렇게 "거룩하다"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물론 이것이 기본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를 위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살고 죽기로 하고 있으니 그것이 거룩함이다. 또 그런 의미에서 사도들은 그 서신에서 믿는 이들을 "성도, 성인"(saints)이라 부른다. 그러나 바울은 그 서신에서 "죄에게서 해방-하나님께 종-거룩함에 이름(열매)-그 마지막은 영생"(롬 6:22)이라고 그 단계를 밝히고 있다. 거룩함(성결)이란 여기서도 보듯이, 단계적으로 열매와 관계 있는 것이다. 즉 거룩함의 열매가 나타나 보여지지 않으면 그를 누가 거룩하다 하겠는가.

그런데 마리아는 우리가 아는 대로 그냥 평범한 한 어머니 그 이상의 기록도 의미도 없다. 주님께서는 마리아라는 믿음 있는 한 여자의 태를 통해 사람이 되셨다 뿐이지 그 여자 즉 마리아라는 이름의 한 개인에게는 성경이 아무 의미도 두지 않고 있으니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이다. 그래서 그 후 남편 요셉과의 사이에 자녀를 여럿 두었고 그 중 하나가 나중에 사도처럼 여김 받은 야고보라는 것만 우리가 알고 있다.

마리아의 입으로(성령 충만하여)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되다 말할 것이라"고 한 적은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몸에서 나셨으니 이것이 어디 작은 일이던가. 그러나 그 외에는 전혀 무게를 둔 적이 없고, 주님 친히 "어머니"라 하시지도 않았고 그냥 다른 여인들처럼 "여자"라고 부르셨을 정도다. 그리고 누군가 한 여자가 청중 가운데 있다가 "선생님을 밴 태와 먹인 젖이 복이 있습니다" 하고 외치니 주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눅 11:28) 하시고 그런 표현과 의미를 정면으로 부정하셨다.

모세가 죽었어도 그 시체를 섬기고 위할 것이 분명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시체를 감추셨다 할 정도인데, 무엇이든 이렇게 인간은 [그리고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의 사악한 충동으로] 신격화하여 미신적인 짓을 잘 하므로, 성령께서는 일부러 이상 사실을 성경을 통해 모든 이에게 알리신 것이다. 그리고 "은혜가 풍성하다"(full of grace)란 말이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를 보고 "은혜가 풍성하다" 말할 수 없듯이, "거룩하다"거나 그 언행이 "은혜스럽다" 하는 등의 표현은 남녀 불문하고 그가 맺는 열매를 두고서 나중에야 조심스럽게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당시의 "왈도파" 사람들이 로마카톨릭의 미신에 휘말려 들지 않았나 여겨진다. 로마 카톨릭이라 지목하기보다, 이미 그 이전부터 이런 부패 타락상이 끈질기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단지 로마 카톨릭은 이런 이단 사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왈도파" 사람들이 다른 점에서는 오늘날의 그 어느 개신교 교리와도 다를 바 없는데 그 점만은 유독 달랐던 것이다.

그 때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헛것"이라는 사실과[약 2:20,26] "사람이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표현에 대해서 그 정확한 구별을 할 줄 몰라 갈팡질팡 했다는 기록은 있다. 이런 사실을 들추어내는 것도, 가장 확실한 안전책은 스스로 성경을 부지런히 읽는 데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마리아 숭배를 했다고 해서 오늘날의 우리 믿음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고 과거사는 과거로 끝나는 일일 뿐이다. 이미 지난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고로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기가 읽은 성경의 가르침 즉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께서 마음 가운데 깨닫게 해주신 것과 일치하는지를 살피고, 상식(이 모두 하나님 주신 것이다)에 부합하고 어긋나지 않는가의 여부를 판단할 일이다. 가령 기적을 논할 때도 그런 기적이 현재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기준하면 비현실적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일진대 하나님은 인간과 달라 능력이 있으시므로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그것이 바로 건전한 상식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상대로 역사(役事)하실 때 천사들을 통해서 하신다[갈 3:19/행 7:38,53]. 왜냐면 천사들은 인간[아담-창 2:19]을 위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히 1:14]. 이런 점도 혼동하지 말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 적(敵) 그리스도가 나타나 각종 기적을 행할 때도 영물들이니까, 천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것과 같은 수준으로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단지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은 과장해서 하니까 성경이 거짓 기적이라 밝힐 뿐이고, 과거 천사들을 통해 나타내신 것은 필요한 만큼 나타내어진 것이므로 규모 면에서 과장해서 나타내는 것과 같을 수가 없다. 이를 기화로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은 "나타내는 능력이 크고 많으니까 진짜 그리스도라" 선전할 것이 틀림없다.

왈도파 사람들이 마리아에 대해 인식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에 있다. 즉 하나님이신데도, 사람 쪽에 치우치게 인식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모친"이란 사실에 일종의 중압감을 느꼈으리라. 동시에 하나님이시란 사실에도 공평하게 무게를 두어 평형 감각을 살렸더라면, 하나님이시니까 인간처럼 그 "모친"이라는 사실에 전혀 비중을 둘 까닭이 없음이 명백해진다.

사람이 되시면 어떻게 나시겠는가. 여자를 통하시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인간만이시라면 그 육친의 무게는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시다.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와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사람이 되시자니 여자가 필요했고 여자가 있어야 하니 방년 열 아홉 정도의 처녀가 필요했고 마침 요한이 출생하게 되는 혈통과 가까운 그리고 다윗의 후대로서의 혈통을 가진 요셉과 혼인 약속을 한 처지의 그런 조건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물론 이 일에는 믿음이 필수이다. 하나님의 역사(役事)라는 믿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놀라 두려워할 일이 아닌가.

그것으로 전부이다. 더 볼 것도 알 것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람되신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 기록에 상세히 나온 것은 그렇게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나셨다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하므로 그렇게 비교적 상세하게 필요한 정보는 제대로 챙겨 성경에 기술된 것이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데 무슨 걸림 돌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가까이하지 못할 장벽이 있다는 말인가. 만왕의 왕이시지만 누구에게나 친근하시고 누구라도 올 수 있도록 그 신분부터가 고귀하지 않으셨고 그 탄생하신 모습부터가 제일 밑바닥 인생의 그것이 아니셨던가.

죄인의 모습처럼 즉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어"[사 53:12]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으로 나신 지 8일만에 성전에 가셨어도 가난한 집이라 그 바치는 것이 고작 비둘기로 대신하는 것이었다. 열두 사도들도 그리고 그 중 당당히 "기둥 같은" 사람들의 신분으로 말하더라도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이라고는 고기잡이가 고작이었던 그런 직업이었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사람들이 마음 놓고 그리스도께 가까이 올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상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신분이 비천하면 비천하다고 오기를 꺼리고 높으면 높다고 경원시한다. 그리스도의 그런 모습이 너무 비천하다 하여 오기를 꺼릴 정도라면 진실로 그런 사람이야말로 제발 오지 말아야 하는 부류들이다. 일부러 그런 사람은 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낮은 자리로 임하신 것이라 해도 좋다. 그 외에는 그 누구도 올 수 있는 가장 편한 자리다. 그래서 하나님 주신 그 선물을 받아 모시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 모친이 무슨 소용이 있고 "성인(聖人)"들이 어디에 소용에 닿는다는 말인가. 살아 계시는 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외에 무슨 사제(성직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지식과 학식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두뇌 좋고 나쁨이 구원 받는 일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기원 731년 교황 그레고리 3세가 당시 카톨릭 교회가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우상화한다고 반대하던 당시 동로마 황제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보면 다른 여러 가지 형상에 대한 언급에 이어, "마리아의 형상도 만들어놓은 것을 사람들이 보면 마음에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당신의 아드님께 구해 주소서' 할 터이니 유익하지 않으냐"는 식으로 말한 대목이 있다.

이미 당시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즉 동로마교회와 서로마교회 공히 마리아 숭배 내지 신격화가 형성되어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신격화하지 아니했다면 어떻게 보통 사람인데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이 역시 사자(死者) 숭배 즉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등의 조상 숭배의 일종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를 부탁한다니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구원이 되어 계셔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 모시기만 하면 되는데 무엇을 또 구원해 달라는 말인가.

이미 이 때 벌써 그리스도의 구원이 무엇인지 불신자나 무신론자만큼이나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다. 구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름만의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를 운영한답시고 큰 소리 치고 있었던 것이다. 개신교나 천주교를 막론하고 오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리아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마리아의 역할을 사람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야말로 사람이시다. 사람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이에 중재 역할을 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시는 것이다. 마리아가 "그 아들 그리스도께 기도해 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 모두 성경에 대한 무식, 성경을 읽지 않음으로 인한 비극적 결과이니,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에게 한도 없이 휘둘리고 있는 결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시지만 또한 영원하신 하나님 독생자이시다. 지금은 많은 아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어 계시지만 우리는 양자들이고 그리스도께서는 원래의 외아드님이시니 곧 친(親) 아드님으로서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진전하여 그렇게 우리 위하여 기도하시는 그 안에서 우리도 직접 아버지께 기도 드릴 수 있음을 밝히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성령으로 기도함"[유 1:20]이다.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는 그 기도 안에서 우리 역시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제사장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 그렇게 기도하는 나를 위해서는 그리스도 외에는 없느냐. 내 이웃인 내 형제들이 성령 안에서 그렇게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서의 기도가 바로 그리스도 나의 주님의 기도이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그렇게 감지덕지하게 여기는 그런 마리아의 기도(정신 나간 말을 하거니와)와 같은 그런 기도해 주는 역할을 바로 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신분으로 당당히 맡아 하고 있음이니 곧 성도(聖徒)들 즉 믿는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일반 불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세상 나라들의 모든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딤전 2:2]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역할이다.

죽은 마리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와 같이 서로를 위해 성령 안에서 기도해 주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는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기도해 주심이다. '죽은' 마리아와 '사시는' 그리스도를 대비하였으니, 여기서 '사신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사시는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마리아는 물론 나중에 부활하지만 현재로는 우리와 함께 살지 않으므로 상대적인 의미에서 '죽은' 마리아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우리 구원 위해 그리스도께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는 발상 자체가 아직 전혀 구원되지 못한 상태를 스스로 노정시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모친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다던가. 성경 기록상의 "모친"일 따름이다. 그리스도께서 역사적 인물이시요 정확히 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사실을 밝히는 성경이므로 그래서 그 기록에 "모친"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더 이상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모친이라는 꼬리표를 달 필요가 없다. 때문에 그런 성경에서조차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더러 "여자"라고 부르신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당신의 어머니가 아님을 공언하신 것이다. '하나님이시자 사람, 사람이시면서도 하나님'으로서의 어머니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사람으로 태어나셨을 때의 그 어머니일 뿐이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계시는가. 성령으로 계신다.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다. 당시에도 비록 사람으로 계셔서 사람이심을 강조하여 자신을 가리켜 "인자(人子)"라는 표현으로 시종일관하셨으나 실제는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셨으니 어느 인간이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되어 존재했던가.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더러 여자라고 하심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머니"라고 부르실 이유도 없고 그렇게 부르셔도 안되는 일이다. 순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마리아를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자기 구원에 대해서는 전연 무지하다[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일괄해서 판단하면 정확하다. 그 스스로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아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완전히 한 고비 넘긴 위치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 스스로 기도해 주는 하나님의 제사장의 신분으로서 당당히 위치해 있음을 배울 일이다.

'하나님의 제사장'만 아니라 '하나님의 희생 제물'과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로 믿음으로써 값없이 선물로서 구원을 받는다 함이다. "내 자신을 구원한다"든가 "나 자신의 구원을 이룬다"든가 하는 등의 모든 성경의 경고는[빌 2:12/딤전 4:16/고전 15:2/빌 3:8,9/딤후 3:15/벧전 2:2] 우리가 현재 구원 받아 있는 상태에서의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을 위의 지적과 같이 다한다는 의미이다.

다하지 못할 때 즉 구원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할 일을 아니하면 마리아를 들먹이는 사람과 똑같이 자기의 믿지 않음을 노정시키는 결과가 되는 까닭이다. 왜냐면 구원은 우리가 믿어야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우리 자신의 역사가 아닌]이기 때문이다. 대체 <그리스도>를 믿지 무엇을 믿는 것인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단지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는가. 일개 인간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착각하여 기도를 하다니 이것이 불경죄가 아니면 무엇이 불경죄고 모독죄라는 말인가.

당시 기록에 나타난 대로 왈도파 사람들의 이상과 같이 마리아에 대한 애매 모호한 태도를 지적하며, 혹자 말하기를 "믿음 지켰다는 그들 역시 마리아에 대해서는 특별히 한 말이 없는 것을 보면 마리아에게 기도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니, 마리아를 숭상한다 해서 그들에게 구원이 없다고 말 못하는 처지가 아닌가. 고로 나는 마리아의 축복을 바라고 기도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이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들이 천주교인들처럼 마리아에게 기도했다는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단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천주교인들도 이른바 "성인(聖人)들"에게까지 기도했던 사실을 비추어볼 때 마리아에게는 더욱 더했을 것임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마리아에게 기도하거나 어떤 영적인 도움을 바라는 것'도 천주교를 배척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삼았어야 하는데 그런 언급은 이상하게도 빠져 있다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도 소위 개신교인들이 천주교는 한결같이 일치 단결하여 반대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지만 그러나 그렇게 반대한다고 다 그들이 진리에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듯이, 그래서 우리가 복음주의적이 아니라고 하는 제7일 안식교에 속한 이들 역시 천주교를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 상황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즉 천주교는 반대하였지만 성경적 구원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얼마든지 무지할 수 있는 것이다.

워낙 천주교의 탄압이 극심하고 도를 넘어선 것이어서 오늘날처럼 각기 교파 간판을 내걸 수는 없었다고 해도 그들 가운데서도 각기 믿는 내용을 보면 천차만별로서 모두가 한결같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신앙 고백서라는 문서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것뿐인데[자료가 워낙 빈약하다보니], 그 소위 신앙고백서를 만든 당사자들도 전체 교회를 대변했다 볼 수 없는 일이고, 자기의 주관적인 것이 가미되어 있을 수도 충분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핍박자 앞에 불려가 신앙에 대한 심문을 받을 때도 유독 마리아 숭배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를 표명하지 않아 거기 동조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그 개인에 관한 것이지 전부가 다 그렇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른바 개신교단으로 버젓이 이름을 내고 있는 안식교인들도 천주교를 사이비라 인정하기는 우리와 같으나, 그들 역시 구원이 없기는 천주교인들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당시 그와 같이 공통으로 천주교의 박해 가운데에 있던 이들 사이에서도 어떤 이는 명백히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진리 안에 확고히 있어 마리아 숭배를 이 세상 지배자 곧 이 세상 신(神)의 계략으로 인지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는 그런 데에 대하여 별로 비중을 두지 않는 이들도 분명히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또 그 때나 지금이나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진리에 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종교적 차이 때문에 또는 특정 종교를 믿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종교적 탄압을 받고 끔찍한 죽음을 당했는지 인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진리를 신앙했기 때문에 그렇게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는 우리 중에 아무도 없다. 마찬가지로 당시 천주교도들에게 무참한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들의 옥석이 구분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무자비한 것도 아니고 진리에 입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상식 차원이다. 그리고 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생명에 들어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평탄하지 않다. 그리고 천국은, 스스로 침입해서 들어가 강탈하는 것과 같이 해서 차지하는 것이다[마 11:12/눅 16:16].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주인[주체] 의식에서 이루어짐이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그러하다" 하셨으므로,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어린 아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갈 3:24]이었고 그리스도 오시면서부터는 '성장한 어른'의 시대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어린 아이 때는 반드시 손 잡아 주어 인도하는 것이나 어른이 되고서는 그 스스로 움직여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그런 '어른된 상태'를 말함이다. 젖만 먹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도 씹어 소화시킬 수 있으니 가령 자기 부인을 아무리 강조해도 이에 위축되지 않고 이것이 생명의 원리임을 알아 이를 기쁨으로 수용하여 당당하게 자기 부인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젖만 먹는 이들이 적잖이 있다[히 5:13].

그러나 이런 젖먹이들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런 상태를 지속한다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 됨을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gift]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으니 이는 그 자신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는 말로써 엄중 경고하고 있고 그러므로 "완전한 데 나아갈"[:2] 것을 격려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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