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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1) 메시아 교회 등록일 2016.02.28 19:26
글쓴이 김일동 조회 526

메시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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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은 동방에서

빛을 추구했던 우리 민족의 건국 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개천(光明開天)이라 했다. 광명개천은 이 지상에 빛의 세상을 펼친다는 뜻이다. 광명을 상징하는 해(太陽)를 따라 동으로 무작정 달려 땅 끝까지 찾아 온 바로 그 열정이다. 우주를 주재하는 창조신을 광명이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리라. 그리고 광명한 세계를 지상에 펴보고자 한 것이다. 말하자면 하늘의 이상을 지상에 구현코자 한 것이니 이 사상은 국호에 그대로 반영되어 배달, 조선, 부여, 고구려, 대진, 고려 등이 모두 광명을 상징하는 의미들이다.

민족의 성산으로 여겨졌던 백두산도 태백산(太白山)이라 하였고 빛을 상징하는 것이 백색이라 하여 기록에 의하면 부여 시대부터 백의 민족으로 알려졌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정신 문화를 일찍부터 발전시켜 온 것이니, 영국과 핀란드 학자들의 공동 연구 발표와 같이 세계에서 가장 지능 지수가 높은 민족으로서 지능이 높으면 높을수록 인간 배후의 이지적 존재인 창조신 그리고 인간의 불멸 내지 영원성을 유달리 의식하게 마련이다.

이런 드높은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워 나갔으니 당대는 가장 드높은 문화국으로 군림했을 것은 불문가지다. 이리하여 그 정신적 문화적 영향력을 중원 천지에 펼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고 이어 인도, 메소포타미아 등지에 이르기까지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다시 말해 정신 문화는 동에서 서로 밀려나간 것이고 그 본원이 우리 민족이라 할까. 송호수(宋鎬洙)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오향청언(吾鄕淸彦)이란 학자는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억지 변조해 놓은 것이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이라" 했고,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 자체도 옛 3한 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차용해 간 것에 불과하다"고 그 책에 기록해두고 있다고 한다.

기록['삼성기(三聖紀)']으로는 단군 이전 환웅(桓雄) 시대가 18대 1565년간이라 하고 또 그 이전 환인(桓因) 시대는 7대 3301년이었다고 하는데, 이 '삼성기'는 안함로 (安含老)라는 서기 600년경의 신라 사람이 쓴 것이라 한다. 송 교수에 따르면, 학술 발표차 일본에 왔던 옛 소련의 여류 민족학자 R.S.M 자리가시노바는 우리 조상들[東夷族]을 가리켜 "신석기 시대 초에 이미 독자적인 고도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동이(東夷)"라는 말은 중국인들이 동방의 야만족이라는 뜻으로 불렀던 명칭이니 우리 스스로 이런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 이 글에서 "동이"라는 이름 대신 "동이인(氏族)"으로 거의 대부분 대체하기로 한다. 고로 이 글에서 동이인이라 표현된 부분은 중국인들이 불렀던 "동이" 또는 "동이족"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결론으로, 동이인들은 주변 국가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수준 높은 독자적 문화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중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당란도 "산동 반도 지역에서 남한 넓이 만한 광대한 지역에 이르는 대문구 문명권 (大汶口文明圈)을 발견했는데, 이곳을 발굴하니까 문자가 나오고 그 곳을 통치한 소호씨(少昊氏)란 통치자 이름까지 나왔으며, 이것을 방사선 탄소 측정을 해 보니 지금으로부터 5785년전 것이었다"고 중국 '광명일보[1977.7. 14]'를 통해 발표했음을 송 교수는 전한다. 연대를 따르면 단군 건국보다 약 150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동 반도에는 문자를 사용한 고도의 문명 국가가 있었고 그 통치자는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로서 동이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미 중국 고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송 교수는 말한다. 역시 중국의 '고사변'(古史辯)에 보면 소호씨는 "동이계야(東夷系也), 동이지인 (東夷之人)"이라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태호 복희씨 (太昊伏犧氏), 여와씨 (女蝸氏), 소호금천씨가 전부 동이인이라는 것은 중국인들 스스로가 밝힌 사실이라 한다.

그리고 조선일보에도 보도된 것이지만, 중국 요령성에서 5천년 전의 여신 묘가 발굴됐는데 이 묘는 무덤이 아니라 사당으로서 그 궁터도 발굴되었다는 것으로 이는 당란이 발표한 유적보다 700년 더 나중의 것들이라는 것이다. 소호의 나라 서울이 요동 반도에 있었고 산동 반도 즉 발해만 안쪽 모든 지역이 단군 이전부터 이미 통치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다 5천년 전의 거대한 궁터가 발굴되었다면 부족 시대라는 미개 사회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송 교수는 주장한다.

지금까지는 주(周)나라 이전은 모두 신화 시대로 치부해 버리고 있지만,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 기타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등을 통해 요(堯), 순(舜), 하(夏), 신농씨(神農氏), 황제(黃帝) 등 모두가 역사적 인물로 다시 조명되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북한 '중앙통신'[1978 년 8.14]에 따르면, "우리 조선족이 청동기를 사용한 것은 기원전 2천년 경,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으로 당시의 농가의 유적도 발굴되었고 농기구와 오곡 씨앗까지 발굴했다"고 전했다.

또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던 구소련 학계에서 발간한 유 엠 푸진의 '고조선'이란 책에 보면, "조선족은 4천년 전부터 청동기를 사용했고 단군 왕검이 있던 유적지도 발굴했으며 단군 조선 시대 중앙 행정기관의 유적지도 발굴했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데도 우리의 청동기가 3천년 이상 소급할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송 교수는 주장한다. 송 교수는 남북 5 만리 동서 2 만리라는 광활한 지역을 환웅 시대 1565 년, 단군 조선 시대 2096년을 지속하면서 다스려 우리 역사가 9,000년이 넘는다 하나,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무조건 옛 기록이라 해서 그리고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해서 전부를 다 정확하다고 보는 것은 물론 무리다.

자료 자체가 부정확할 뿐 아니라 편찬자 개인의 주관적 견해의 개입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아는 것만 해도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이 얼마나 심한가. 그러나 주목하는 것은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한 개의 왕조가 그 정도로 장기간 지속된 예는 없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와 이웃한 중국의 역사도 [하, 은, 주는 같은 동이인 계통이라고는 하나] 역시 말할 것 없고, 그 이후 300년 이상 버틴 왕조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같은 시대의 중국 역대 왕조는 300년도 채 못 가 전부 망해 버렸는데, 같은 시대의 우리나라는 2천년이라는 긴 역사를 간직한 채 그 넓은 지역을 어떻게 통치할 수 있었느냐, 해답은 간단하니 그것은 위대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송 교수의 지론이다. 홍익인간 곧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이라는 용어는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 신화에서 최초로 등장하는데 비록 신화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국가 통치 이념으로 확정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송교수는 주장한다.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여 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야 인간 양심이 가르치는 바다. 곧 창조신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이대로 순응하기로 결론 내리고 그것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것이 바로 그런 유구한 전통과 역사의 이유가 될만도 하다. '맹자'에 나오는바 유교의 5륜이 그 출처가 바로 동이인이었다고도 송교수는 말한다. 순(舜) 임금이 글(契)을 불러 들여 사도(司徒ㅡ즉 문교장관)에 임명하고 인간에게 윤리를 가르치라 해서 '글'이 만든 것이 5륜이라는 것이다.

'글'은 동이인이다. 그리고 '맹자'에 보면 순 임금도 "저풍(諸馮)에서 태어나 부하(負夏) 땅에 옮겨 살다가 명조에서 죽었는데 그는 동이족이라" 했다. 그러니까 오륜을 선포한 '글'(契)이나 오륜 선포를 명령한 순 역시 동이인이다. 따라서 삼강오륜의 연원은 동이 문화라고 송교수는 말한다. 공자는 동이의 혈통으로 은나라 왕족 송미자(宋微子)의 후손인데, 현재 홍콩 대학의 임혜상 교수나 대만 대학의 서량지 교수도 은나라는 동이라 했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고사변'에도 같은 얘기가 실려 있다.

또 공자 자신도 '논어' 에서 말하기를 "술이부작" (術而不作)이라 하여 "나는 요와 순의 사상을 계승해서 서술했을 뿐이요 내가 만든 것은 아니라" 했고 중국 고전 '초사'에는, "황제(黃帝)는 백민(白民)에서 태어나고... 동이족에 속한 사람이다" 했으니 황제의 5세손인 요 임금이 동이인일 수밖에 없다고 송교수는 말한다. 따라서 동이인 요, 순 임금의 사상은 동이의 사상이고, 역시 동이계인 공자의 유교가 이를 계승하였으니 우리의 홍익인간 사상에서 파생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다고 송교수는 말한다.

도교도 마찬가지다. 노자 (老子)가 황제[黃帝]의 사상을 이어 받았다 해서 "황노지교(黃老之敎)"라 하는데 동이인인 황제(黃帝)의 사상, 즉 동이의 사상을 이어 받은 것이 노자의 도교이므로, 비록 중국 대륙에서 고구려 시대에 역수입되었다 해도 그 뿌리는 우리의 홍익인간 사상임을 송 교수는 강조한다. 불교 사상은 어떤가. 석가 이전 우리나라 전불시대 (前佛時代)에 대해서는 아도화상의 비문, '삼국유사', 지공선사(指空禪師)의 천보산 희암사 중수문에 모두 나와 있듯이, 석가 자신도 '대방광 불화엄경' 보살 주척품에서 이르되, "해동 금강산에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있어 1200 대중을 거느리고 법을 설하고 있는데 그 불법이 예로부터 거기 있었다 (從昔己來)"고 증언하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이 자비를 주축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홍익 인간의 바로 그 정신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라고 송교수는 말한다. 4700 년전에 집필된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소문'(素問) 편에, "동방지역천지지소시생야(東方之域天地之所始生也)"라 적혀 있는바, 이는 동이가 살고 있는 지역 즉 "동방은 지구가 형성될 때 최초로 문화가 발생한 곳"이라는 뜻이니, 고로 지구상 문화의 최초 원류는 동이가 살고 있는 동방지역이라는 주장이다.

또 이 소문 편에는 "침술도 역시 동방으로부터 전해졌다"고 되어 있고, 한문이라는 글자 역시 '글'이라는 사람과 '창힐'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둘 다 동이인이라는 것이 송 교수의 주장이다. 이하의 모든 내용도 송교수의 연구 발표에 의한다. 즉 법학자인 동경 대학의 나까다 (中田薰) 교수는 '고전법에 근거한 문화동원론고 (文化東源論考)'에서 함무라비 문화는 수메르법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는데, 수메르의 역사가 5500 년 전에 시작되었으니 수메르족은 어디서 왔는가 하면, 영국학자 크래머 (Kraemer)와 일본의 우에노(上野景福)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수메르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결코 아니고 동방에서 이동해 왔으며 그것도 문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태호 복희가 쓰던 팔괘부호 (八卦符號)와 흡사한 문자로서 5500년 전 서쪽으로 옮겨 왔다"고 했다.

복희나, 수메르에서 우르(Ur)국을 최초로 건설한 왕조나, 최초의 수메르 메소포타미아에 문화국을 건설한 엔릴 (Enril)이나 거의 같은 시대 인물이다. 고로 5500년 전 복희 문화를 가지고 동이가 서쪽으로 갔다는 결론이 되는데, 수메르 말과 우리말이 같은 것이 많다는 것이 최근 미국의 연구 결과라고 송 교수는 전한다. 다만 송 교수는 모세의 5경이 함무라비 법전에서 나왔다는 니까다의 주장을 인용하는데 이는 틀린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이 수메르 문화의 산물이고 수메르는 동방 동이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 설명이 된다. 즉 홍익인간이 그 발원이 된다면 홍익인간은 조물주 하나님의 계명인,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을 건국 이념으로 하였지만 장구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인구가 많아지고 사람 마음이 영악해지면서 그것이 인간의 실생활에 차츰 부합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홍익인간의 이상은 좋으나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그 양심대로 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공자 역시 그런 큰 뜻을 품고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냉대만 받고 실의 속에 낙향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자의 유교 사상이 버려진 것은 아니다. 사람이 양심대로 살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오늘까지 양심의 호통 속에 안절부절못하는 것과 같다. 홍익인간이란 구호가 이상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적합하나 실제 삶에서는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고로 모세 5경과 함무라비 법전의 차이는, 후자가 양심의 소리에 맞추어 법은 잘 제정하였으나 이를 능히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없이 법 자체만으로 존속되는 소극적인 것으로 그친데 반해, 전자 즉 모세 율법은 그런 인류 공통의 법 정신을 완전히 실천 구현하여 이상적인 세계를 이룩하게 될 그 해법인 그리스도를 미리 가르치고 그 쪽으로 인도하기 위한 적극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에 있으니 그래서 근본적인 차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까다 교수는 성경을 모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으니 그런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루마니아 신부이자 문학가인 게오르규 (Gheorghiu)는 "홍익인간이라는 단군의 통치 이념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법률이며 가장 완전한 법률"이라고 프랑스 유력 주간지 '라프레스 프랑세스'지[1986.4.18]를 통해 발표하여 "한국 민족이 낳은 홍익 인간 사상은 미래 21 세기의 태평양 시대를 주도할 세계의 지도 사상"이라고 했고, 그래서 서양인들이 "미래의 세계를 지배할 보배, 최고의 이념은 한국 사람들의 홍익인간 사상이라"고 했다고 한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이 홍익인간은 성경의 하나님 사랑으로써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인간 삶의 법질서를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모세 이전 노아 이후 이 동방의 동이가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동이(東夷)"족이라는 것은 중국에서 보면 우리가 동쪽이므로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도 공자의 자손인 공빈이라는 사람이 쓴 '동이족 열전'이라는 책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즉 "먼 옛날로부터 동쪽에 한 나라가 있었으니 이를 "동이"라 한다. 그 나라에 단군이라는 훌륭한 임금이 태어나 아홉 개 부족(九夷)이 그를 받들어 왕으로 모셨다. 일찍이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도통한 학자가 있었는데. 중국의 황제(黃帝)가 글을 배우고 내황문(內皇文)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염제(炎帝) 대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사람 삶의 법을 가르쳤다. 또 동이족 사람인 순(舜)이 중국에 와서 임금의 뒤를 이어 윤리와 도덕을 가르쳤다.

소련(少蓮), 대련(大蓮) 형제가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더니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을 슬퍼했는데 그 나라의 사람이었다. 이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義之國)가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나의 선부자(先府子)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이제 우리가 맺는 결론은 정신 문화는 그 흐름이 동에서 서쪽으로 나가는 것이 그 순서 또는 순리라는 것이다. 이 정신 문화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된 도리를 다하며 사람답게 사는 삶의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이다. 이에 반해 물질문명 혹은 과학문명이란 것은 이 근본을 건드리지 못하고 동물적인 생명에 한정될 뿐이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생활이 편리해지니 게을러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편함을 기화로 사람들의 심성이 점차 개인주의[이기주의] 즉 동물적인 야수성만을 부채질하여 인성(人性) 면에서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우리가 신령한 몸을 입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이런 물질문명의 모든 것은 말 그대로 한시적인 동물적 생명에 속하여 모두 안개처럼 사라질 것에 불과하다. 왜냐면 인간이 동물적 생명의 '물질'에 속하기 때문에 부득불 이런 과학[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과학이란 것은 이 물질 자연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던가] 문명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망정이지, 만일 신령한 몸이라면 이런 모든 것이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초자연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정신 문화의 흐름은 동에서 서쪽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때문에 유대 예루살렘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본격화한 복음 전파 운동은 바울이 아시아 즉 동쪽으로 나가려는 것을 주님께서 막으시고 마케도니아 즉 서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신 것이다. 왜냐면 이미 동방은 정신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일찍 발달한 그만큼 부패하기도 극에 달해 벌써 유교, 인도교, 불교와 같은 진리 아닌 것들이 그 곳의 정신 문화를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복음이 전파된다 하여도 그런 부패한 정신 문화에 쉽사리 동화되기 쉬울 정도로 진로가 순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쪽이라 해서 그 진로가 평탄대로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스도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여 300년 후 국가 종교로 변질되면서부터는 타락 일로를 밟아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동방보다 그래도 서쪽이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가 진행하기가 쉬운 순리의 코스였던 것이다. 이렇게 복음의 영향력은 동방으로 진행해간 것이 아니라 계속 서쪽으로 진행하여 미대륙으로, 거기서 다시 극동 쪽으로 그 대체적인 흐름이 가닥을 잡아 간 것이라 보아진다.

이제 마지막 때를 당하여 우리 한국 교회가 그 옛날 정신 문화의 진원지로서 서방으로 그 세력을 뻗친 것처럼 "빛은 동방에서 서방으로"라는 구호 아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고 있다. 종교로서가 아니라 인간 삶의 기본 법칙으로서 사람 삶의 기본 정신으로 제대로 된 '문화'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홍익인간이라는 건국 이념은 진리를 알지 못하던 때의 말이고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 사는 진리가 나타났으니 천국 건설의 이념과 그 이상적인 해법으로서 나가야 하는 것이다.

홍익인간으로 말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하는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생쥐들' 족속을 기준하여 말할 때,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생존의 지혜를 발견해낸 것에 불과하다. 즉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달아두면 고양이가 달려올 때 쩔렁쩔렁 요령 소리가 요란할 것이므로 그 때 여유 만만하게 쥐 구멍 속으로 제각기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것은 어떻게 그 방울을 다느냐 하는 것이었고 그 해법을 그리스도 오시기까지 찾지 못한 채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라는 아주 완전하고 이상적인 방법을 안 이상 이제 한반도 교회는 그 막중한 사명감을 안고 다시 서쪽으로 진출해야 하는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까 대륙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들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미 바울시대부터의 "빛은 동방에서"라는 흐름을 따라 복음을 먼저 받은 구미인들은 애초 정신 문화에 일찍 깨어났던 옛 시절의 동방의 전철을 밟아 화석처럼 굳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완고해지고 부패해지고 화석화되어 오히려 야만(野蠻)이 되어 가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로 나체족이 범람해가며 일찍부터 성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교육 받은 전통은 깨뜨리고 소돔 고모라의 죄[동성끼리의 성 유착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알면서도 그런 행위들이 곰팡이처럼 번지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의 소위 "기독교 국가"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역할은 한물 간 셈이다.

홍익인간이라는 의젓한 정신적 지주 역할이 퇴폐적인 사대주의로 바뀌어진 것은 고구려가 흥하는 대신 신라가 당나라 즉 외세에 의존하여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아(發芽)되고 결국 모든 사상적 정신적 기조를 형성해 버렸다. 그런 풍조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모화(慕華) 사상이 사라지는가 하더니 이제는 모서(慕西) 사상이다. 앞에 지적한 '소돔 고모라의 죄'마저도 '인권'까지 들먹여 가며 소위 기독교 방송이라는 데에서 비호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세계는 온통 광란 상태로 돌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류의 장래는 교육에 있는데 청소년들의 정신생활이 인터넷과 기타 소위 "문명의 이기(利器)"들로 인해 날로 황폐해 가니 따라서 현 상태대로의 인류의 장래는 없다고 단언하게 된다. 캄캄한 무지보다 아는 체 하는 선입견, 편견이 더 무섭다. 똑똑히 제대로만 안다면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마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줄로 착각하고 그 소위 알고 있다는 자만심이 시멘트가 되어 도저히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갈 재주가 없다.

그러므로 복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그들은 제쳐두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그런 교만으로 기독교의 진리는 아무 내용도 없다 단정하고 되려 아시아의 불교, 유교, 노자 사상에서 그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그 쪽으로 몰리고 있다. 무엇을 제대로 알고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야 누가 무슨 말을 할까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알았다는 식으로 나가니 그들에게 아무리 좋은 말, 좋은 해석으로 다가가본들 쇠귀에 경 읽기다.

그들의 그런 타락한 모습을 답습할 아무 근거도 이유도 필요도 없다. 초대교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깨끗한 복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아시아, 아프리까 대륙에 우리가 주체가 되어 전달하여 심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홍익인간의 정신 문화로 선도(先導)하던 시대와는 다르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즉 그런 모든 것의 실체로서 그러나 "빛은 동방에서"라는 동일한 슬로건만은 변함없이 초대교회가 나가던 그 진로와 방향을 따라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인에게 그 "동방"은 유대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종교의 틈바구니에 끼이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불교나 회교권 내로 들어가 목숨을 바쳐 전도할 일이다. 거기서 우리의 피로써 우리의 증언을 확증할 일이다. 특히 이슬람은 전투적이어서 가장 살벌한 곳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 한 사람의 구원 얻을 사람이 있다면 목숨 바쳐 수고할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 갖은 핍박과 환란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홍익인간" 하던 당시는 어린 아이 시절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동이인들을 칙사 모시듯 했지만, 이제 우리 한민족 교회는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그 본을 따라 우리의 고난 받음의 피로써 우리 증언을 인(印) 칠 때가 온 것이다. 옛 홍익인간으로 세계 정신문화를 창도하고 지배하던 기풍을 따라 복음 사업의 새 기원과 장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서구 문화의 퇴폐적인 것에 물들어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체가 되어 세계를 복음으로 물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의 기풍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우리말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우리"라는 말이라고 한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의 집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을 왜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집이라고 해야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리는가 하는 것이라 한다. 사람 삶의 요체는 공동체 의식으로서의 '우리' 의식이다. 성경에 밝힌 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피조물로서의 삶, 그리고 그 이전에 생명과 사랑의 법질서의 기본이 바로 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인 것이다.

'나' 하나로서의 자기중심주의가 아니고 '나'를 포함한 '우리', '우리'라는 관점에서의 '나' 자신을 인식하는 그런 고차원적인 사고 방식에서 그 옛날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정신적 지주로서 우뚝 서 있었다. 때문에 서양[유럽]에서 기독교[천주교인지 개신교인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천주교일 듯하다] 복음이라고 이 땅에 전해 주려고 왔는데 보니 정작 놀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고 그 후일담을 기록한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자기네는 소위 사랑이라는 기독교문화를 자랑하는 터이지만 그리고 그러면서도 생활의식은 자기중심의 개인주의로 팽배하지만 이 한국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모르면서도 자기네 서양인들보다 더 확실히 그런 '우리' 의식 곧 사랑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의식이 생활습관화되어 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 인간적 삶[동물적 삶이 아닌]의 핵심인 이 공동체의식 즉 '우리' 의식의 기본 진리를 전할 때가 왔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은 하나님을 머리로 모시어야 하는 것,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그 몸과 같고 그 몸의 각 지체 각 부분이 되어 영위하는 하나로서의 공동체 생활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고, 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창조에 의해서만 그 유일한 해답이 있음을 아시아 아프리카 모든 나라 국민에게 소리 높여 외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한국 민족이 이 온 세계 모든 나라의 정신 문화의 주축을 이루고 그 중심 국가로 우뚝 서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세상에 속한 영광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세상에 비치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대언자(代言者) 그리고 사신(使臣-고후 5:20)으로서 각 나라에 전할 메시지를 지니고 그 사명을 안고 있음을 강조하여 하는 말이다. 홍익인간이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을 널리 똑같게 이롭게 그래서 행복하게 살도록 함이다.

똑같게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한 몸' 의식 가운데서 각자는 오직 이웃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생활철학으로 뭉쳐져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홍익인간, 이웃 사랑 모두가 헛된 구호에만 그칠 뿐이다. 홍익인간의 사상이 처음에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나 그래서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람 삶의 기본이 되는 줄은 알지만 세상에 악이 팽배하고 이기주의가 자연적인 추세로 넘침에 따라 그런 주장과 삶의 철학은 한낱 이상주의로만 인식되어 점차 퇴색되기에 이른 것이다.

새삼스럽게 그 '홍익인간'이 이 21세계에 들어선 우리 인간 사회가 마지막으로 추구해야 할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 동안 너나없이 이기주의에 찌들어진 삶을 살다보니 결국에는 그것밖에 없더라고 하는 재확인 정도일 뿐이지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 역시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을 믿지 않는 한 전혀 무지한 것이다. 앞에서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신부[神父]가 그런 말을 한 것도 그가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 소리이다.

그야말로 밥은 지어놓았는데 밥 펄 주걱이 없어 쩔쩔매지만 그 주걱은 자기 손에 쥐고도 그것이 주걱인 줄 모르는 것과 같다 할까. 이는 그가 아무리 창조신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대로의 그 진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인간이 만든 교리에 갇혀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다. 홍익인간의 기원이 어디냐. 아무리 우리 민족의 지능이 세계적으로 뛰어나고 정신 문화가 발달했어도 같은 노아의 후손들이 아닌가.

앞에서 이미 그런 연대 따위는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 없다고 전제한 바 있다. 모든 것은 노아에서 다시 기원되는 것이다. 대홍수 이후에 각 사람이 언어의 혼란을 일으켜 언어가 통하는 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족속들을 이루고 산지 사방으로 제각기 자기 독립의 길로 달려 나간 것이고 우리 민족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홍익인간의 사상이란 당연한 것이고, 아담이 가르쳤고 그리고 에녹의 기적적인 승천(昇天)을 본 역사를 알고 있는 노아의 가르침을 받았으면 노아처럼 하나님을 섬길 일이지 무엇 때문에 태양을 따라 어리석게 좇아 다니기로 작정했는지 미욱한 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과거사는 묻어두는 것이지 새롭게 꺼낼 필요는 없다. 이미 흘러간 과거사를 두고 어쩌겠는다는 것인가. 역사는 이미 흘러간 물과 같다. 단지 그 근원을 미루어 살펴 우리의 각오를 새로 다짐해두자는 데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과거의 홍익인간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 사람으로 나신 후 때는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시대다. 즉 그리스도를 각자 개인적으로 영접하느냐 여부를 묻는 것, 오직 이것뿐이다.

바로 이 메시지, 이 광명의 말씀을 전하자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타골이 말한바 동방으로부터의 등불이 아니라 동방으로부터의 광명 즉 떠오르는 태양이 되는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 하면서 시를 썼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아시아의 황금기에 등촉 하나가
일찍부터 이글거렸으니, 곧 코리아다
다시 한번 그 등불 켜지는 때
그대는 동방으로부터의 광명이 될 것이다
위축되지 않은 마음에
높이 쳐든 머리에
자유를 노래하는 지식에
자질구레한 장벽으로 조각 나 버린 세계에서도
갈라 터지지 않고
진실의 깊은 밑바닥에서 생명의 말씀이 샘솟고
줄기 찬 노력은 마침내 완성을 한 아름 포옹하고
드맑은 지성의 물 소리는
관습이란 화석과 사막 위를 길을 트며 흘러 내리고
무한으로 나래 치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 마음이 활짝 열리는
그 자유의 모국(母國)으로서
내 마음의 고향 코리아여, 부디 깨어나소서!

절도 있는 인간 삶의 교훈

위에서 인용한 공자의 자손인 공빈의 기록에서도 보듯이 공자의 남녀 7세 부동석(不同席) 교훈은 공자가 창안한 것이 아니다. 그가 기록한 대로 우리 조상들은 "남녀가 따로 거처해 한데 섞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과연 그것이 사람 사는 지혜로구나 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한 결과 어릴 때부터 그런 습성을 길러 주는 것이 이상적이라 보고 공자가 "7세부터 부동석"이라 가르친 것이다. 앞에서 강조한 대로 사람이란 것은 짐승과는 판이하다.

비록 자연계에 속한 같은 육체를 지니고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지만 완전히 딴 존재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짐승이나 사람이나 신체 구조상의 약간 차이가 있을 따름이지 다르다 할 것이 무엇이냐" 하고 남녀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지낸 것이다. 오늘날도 일부 인간들이 "사람이 짐승과 나을 것이 무엇이냐, 동물이 아니냐" 하고 막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지능이 우수한 동이인들은 이렇게 갈파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짐승과 전혀 다르다. 영원한 영혼을 지니고 있으니 이는 위에 있는 하나님의 직접 보살핌을 받는 존재라는 증거로서 죽음 후에도 반드시 어떤 보응과 보답이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여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민족으로 그리고 사람 사는 도리를 생각해내어 홍익인간의 사상을 고수하고 짐승 같이 살지 않고 절도 절제 있게 살며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항상 생각하고 이를 실천했기에 동방의 예의지국으로 또한 고대에 널리 알려졌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짐승처럼[동물마다 다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날짐승들은 사람보다 더 정절이 있는 편이다] 난잡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울러 통찰하며 아담하고 기품 있게 처신해야 함을 가르치고 그렇게 그 기풍이 전승되어 온 것이다. 왜냐면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처럼 행동하여 성적으로 타락하면 그 어느 무엇보다도 이성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욕 다음에 성욕이니 이런 욕망에 무절제하게 한번 빠지면 그 인생을 망쳐 놓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품격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으므로 허례허식이 아니라 사람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소위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 심성은 오히려 반비례로 타락하여 수성(獸性)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오늘날 성적 문란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깊이 파고 들고 있다. 완전 무방비 상태다. 이런 형국으로는 미래가 절대로 없음을 단정할 수 있다. 이 세상은 실로 막가는 판이다.

가부장제 역시 유교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사람 삶의 지혜인데 현대에 올수록 보다 인간다워지지 못하고 동물처럼 되어 가는 추세에 따른 해괴한 변조(變調)가 '가부장제 타파'일 뿐이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단체에는 단체장이 있는 것으로 입증되는 바다. 즉 머리가 없이 어떻게 여럿이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는가, 이는 기본 상식에 속한다. 가정이라는 데는 사회 구조의 기본 단위요 그 근원이다. 이 기본 단위가 머리 없는 괴물처럼 되어 버릴 때 그 사회나 국가의 장래가 보장되겠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니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머리가 대표적으로 세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남자가 '먼저'이든 여자가 '먼저'이든 어느 하나가 먼저 있고 나머지 하나가 거기서 파생된 것이다. 성경은 남자가 먼저라고 하는 것뿐이다. 이는 만물의 이치가 불가불 그렇게 되도록 구조적으로 짜여져 있음이다. 전통적으로 남자가 가정의 머리가 되어 왔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남자의 힘이 여자보다는 일반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이는 우월함과 열등함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그러함을 말하는 것이다. 남북한을 통틀어 한국 민족의 지능지수를 1,2호로 책정한 영국 및 핀란드 심리학자들의 공동 연구에서 보듯이, 여자의 지능지수가 남자의 것보다 4 정도가 낫다는 것을 사계의 연구가들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터이지만, 워낙 양성평등의 기세가 도도하기에 섣불리 발표했다가는 대중들로부터 뭇매를 맞을까 하여 쉬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진실이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은 남자가 여자와 동시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창조되었고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대칭성의 원리에서도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먼저 그 기본되는 것이 생긴 후에 그 다음에 그와 대칭되는 것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동시에 생기지도 않거니와 생길 수도 없다. 남녀라는 것은 만물의 이치와 마찬가지로 즉 만유(萬有)가 대칭으로 되어 있음과 같이 대칭성이라는 동일한 이치를 따름이다.

성경은 남자가 가정의 머리요 여자의 머리라고 해서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여자를 폭력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목숨을 바쳐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함이라고 단언하고 있다[엡 5:28]. 바로 이것이다. 사랑의 계명에서 그 정곡(正鵠)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여자인들 무엇을 더 이상 바라겠으며 남자인들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며 불평하겠는가.

서로 한 몸, 한 덩어리로 살면 그보다 이상적인 인간 관계는 없다. 남자가 자기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여자가 반발하여 자기 소임을 버린다면 그것은 막가는 것이고 파장 나는 것이고 끝장이지 달리 해법도 미래도 아무 것도 없다. 왜 그런 자살행위를 하는가. 인간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 지성적으로 행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래서 미쳐가는 세상이라 하는 것이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부터 그러함을 성경은 미친 마음을 품은 것으로 인간 삶을 비유했다[전 9:3].

사람이 미쳐 간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처럼 되어간다는 그 소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성적인 언행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때 이것이 사람 삶의 진수(眞髓)다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천하에 전할 중대한 책무가 우리에게 부과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민족임이 영국과 핀란드 심리학자들의 공동연구에 의해 최근 밝혀진 대로, 이런 민족이기에 인간 정신문화의 원줄기가 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학자들도 있다.

공자나 맹자, 백이와 숙제 등 중국의 현인 지자들로 지목받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 출신이었고 한자(漢字)도 동이가 처음 만들어낸 것이라는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어쨌든 지능이 우수한 민족답게 공자가 일찍이 말한 것처럼 "사람 사는 도리를 아침에 들을 수만 있다면 저녁에 비록 죽어도 좋다" 라고 하는 구도(求道) 정신이 강하여 빛은 동방에서부터 나온다고 해서 동방으로 그침 없이 말을 달려나온 것이다.

그러다가 한반도에 이르러 동쪽의 땅 끝까지 이르러서는 그냥 주저앉은 곳이 한반도인데 따라서 빛으로 상징되는 진리 탐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사람 사는 도리를 따라 일상 삶을 살고 그 도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이름이 났다. 일상 의복도 이 빛을 상징하는 흰빛으로 해 입어 백의민족으로 알려질 정도였고 이 사실은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도 여전하여 "얼굴이 희고 흰 옷 입기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서방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흰옷 입은 남녀노소로 특징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경제발전이 되면서 세계화되어 간다고 해서 너나없이 채색된 옷을 입기 시작하여 오늘날은 그런 백의민족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전통과 관습과 의식은 변할 리 없다. 빛으로 상징되는 진리를 찾는 마음이 강하여 각종 인생 도리를 전한다는 종교철학을 쉽게 받아들여 불교가 오면 불교, 유교사상이 들어오면 유교, 기독교가 들어오면 그리스도의 진리를 세계 어느 나라와는 달리 전심으로 받아들이는 고로 그 세력이 시대시대마다 왕성했다.

사람 사는 도리를 따라 살기를 일찍부터 터득하여 사람의 죽음에 대한 명상이 남달라 어느 민족보다 장중하게 장례식을 치른 것으로써 옛적부터 이름 났다. 그런 반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기로 소문 난 민족이었으니 삶의 맛 또한 제대로 익힌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를 보면 수난으로 일관하는 민족사다. 지능이 우수하여 찬란한 문화와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여 세계의 선구자로 달린 적이 여러 번이나 워낙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즐기지 않는 탓에 약소국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강국의 침탈을 받은 적이 많아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탈을 벗어날 수 없다가 국가적 영도자를 만나 한강의 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하게는 되었으나 워낙 갑작스럽게 제법 잘산다는 무리의 대열에 끼이다보니 부작용이 엄청나 조상 대대로 전수해온 정신 문화의 급속한 퇴영과 타락과 황폐를 불러 와 동족 상잔의 된서리를 다시 불러 일으킬지도 모를 백척간두에까지 서 있다. 김구 선생이 일찍 갈파한 것처럼 우리의 밑 뿌리는 정신문화 창달에 있다.

진리를 찾아 동방으로 줄곧 말을 달려온 민족 정기가 다른 데에서 꽃피울 수 없고 다른 것이 무게 중심을 잡아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이제 인생 진리를 깨닫고 인간 삶의 원뿌리를 깨달았으니 이 진리를 온 세계에 전하는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고 지체없이 이행할 때가 지금 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는 유대민족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이제 그 마무리 역사는 세계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아 일찍부터 진리를 찾아 동방으로까지 줄기차게 달려와 사람 사는 도리를 나름대로 깨달아 실천하던 이 한민족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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